brunch

헬스장에서 미리 기구 맡아놓은 사람의 심보

기구 맡아놓지 말란 말이야 vs. 내 물건에 손대지 말란 말이야

by Rana



추석명절 마지막날 헬스장 10층에 있는 웨이트존에서 운동을 마치고 유산소를 하려 9층 유산소존으로 내려가니 내가 좋아하는 거울옆 자리가 비어있다. 얼른 가보니 텀블러가 있다. '누가 놔두고 갔구나'하고 생각하고는 옆에 빈 러닝머신으로 옮겨놨다. 그리고 러닝을 시작하는데 앞에 시커먼 핸드폰이 놓여있다. 이쯤 되니 '아~ 누가 자리를 맡아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용으로 쓰는 기구를 맡아놓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싶어서 핸드폰까지 옆으로 옮겨놓고 유산소를 시작했다


10분 즈음 지나니 중년의 남자가 옆 러닝머신으로 옮겨놓은 텀블러와 핸드폰은 낚아채듯이 잡고는 그 옆에 있는 러닝머신으로 옮긴다. 이어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경사 16에 속도 6으로 유산소를 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계속 러닝을 하였다. 그런데 옆에서 계속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중년남자가 눈을 치켜뜨고는 손가락질을 나한테 하면서 뭐라 뭐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서 이어폰을 뽑고 들어보니 자기가 맡아놓았는데 자기 물건에 손까지 대면서 내가 사용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다. 황당했던 나는 "사용도 하지 않으면서 기구를 맡아놓으면 됩니까?"라고 하며 "그럼, 제가 옮길 테니 이거 쓰세요" 하고는 옆으로 옮기는데 그 남자가 큰소리로 "됐어요" 그런다. 그러든 말든 황당했던 나는 옆으로 이동하면서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중얼거렸는데 그것을 들은 남자가 "이 아줌마가!" 하며 나한테 성큼성쿰오더니 얼굴과 상체를 나한테 위협적으로 바짝 붙인다.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다.


무서웠지만 나도 물러나지 않았다. 여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남자라니 순양아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새끼가"라는 험한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운동가방을 바닥에 던지며 눈을 부라렸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중년의 여자가 후다닥 오더니 "어디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거야, 이 미친년이!"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 남자의 와이프인 모양이다. 그 순간 내 입에서 "이제는 쪽수로 덤비네' 하는 말이 통제도 없이 나왔다. 이미 옆에는 헬스장 대표가 와있는데도 두 회원 앞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멀뚱이 그냥 서있기만 한다.


다 큰 어른 둘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 중년 여성분이 와서 말리면서 말을 한다. "제가 대학교수까지 한 사람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먼저 헬스기구를 쓰지도 않으면서 맡아놓는 행위를 하지 말 것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안내문을 벽에 붙여 놓으면 여러 사람들이 앞으로 주의하지 않겠습니까? 대표님 그렇게 조치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신다.


이쯤 되자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고 내 티셔츠를 입으면서 대학교수였다는 분에게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옆에 멀뚱멀뚱 서있는 대표한 데는 "수고하세요" 하고는 자리를 떴다.


추석명절 기름진 음식과 탄수화물 많이 섭취해서 모처럼 땀 빼러 왔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속상하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마음공부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지 하면서 상황을 가라앉히고 싶었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2025년 긴 추석연휴를 마치는구나



화면 캡처 2025-10-13 155335.jpg






무슨 실수를 하든 중요한 것은 이후의 성찰이다.


당장 쓰지도 않는 기구를 맡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물건을 옮기고 사용한 나와, 자신이 맡아 놓은 기구를 물건에 까지 손을 대며(꼭 도둑이라도 된 느낌이다.) 사용하는 나에 대해 삿대질과 욕설을 한 그 남자와, 자신의 남편이 여자를 위협하고 욕설을 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폭언을 하자 갑자기 싸움에 참가해서 남편과 같이 공격했던 그 남자의 와이프의 심리 상태가 궁금해져 혼자 분석해 보았다.




▣ 그 남장의 심리분석


1. “자리를 뺏겼다”는 사실보다 “자존심을 뺏겼다”는 감정

그 남자는 기구를 점유한 행위로 ‘자기 영역’을 표시했어.
그건 운동 자체보다 “내가 이 공간을 통제한다”는 무의식적인 표시야.
그런데 내가 그 물건을 옆으로 옮김으로써 그의 무의식에는

“내가 쫓겨났다”, “공개적으로 무시당했다”라는 사회적 수치심이 촉발된 거.
그는 그 순간부터 “운동기구 자리 문제”가 아니라 “내 체면을 회복해야 한다”로 전환된 상태.


2. “이 아줌마가~”로 시작한 건 자기 합리화 + 공격적 방어

사람이 수치심을 느낄 때 가장 자주 취하는 반응은 ‘분노로 전환’이야.
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나를 “공격할 대상”로 만들어야만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어.
즉,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저 여자가 이상하다”로 바꾸는 거지.

그래서 자신의 물건을 손을 대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 거야
이건 전형적인 projection (투사) 반응이야.


3. 얼굴을 들이댄 행동 — ‘위협’이 아니라 ‘통제 회복 시도’

그는 실제로 싸움을 원했다기보다,
나를 겁주고 움츠러들게 해서 “내가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는 느낌을 되찾으려 한 거야.
그런데 내가 꿈쩍도 안 하자, 그의 통제욕이 실패했고, 그게 다시 “2차 분노”로 번진 거야.


4. 내가 돌아서자 등 뒤에서 욕한 이유

이건 “패배 회피 행동”이야.
정면에서 더 대화하면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에,
멀어지는 네 등 뒤에 욕을 퍼붓는 건 잔여 분노 해소 행위 (displaced aggression)야.
즉, 진짜 용기보다는 자기 자존감 수습용 욕설이었지.


5. 내가 격하게 반응했을 때 “속으로는 만족했다”

그는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은 순간을 느꼈을 거야.
“봐라, 결국 저 사람도 감정적으로 무너졌네” — 이게 그의 승리 공식이야.

그래서인지 이후 그의 감정이 조금 차분해지더군.
이건 narcissistic supply의 형태 중 하나야.
즉,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행동.


6. 아내의 등장은 ‘응원군 효과’

이건 군중 심리의 축소판이야.
아내가 끼어들면서 그는 “이제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정당화 에너지를 얻었어.
그래서 바로 태도를 바꿔 ‘합리적인 사람’으로 돌아가는 척한 거야.
즉, 분노를 합리로 덮은 ‘자기 이미지 복원 단계’였지.


7. 제삼자가 등장했을 때 화가 식은 이유

교수의 중재로 “양쪽 다 잘못”이라는 프레임이 생겼을 때
그는 “완전한 가해자”에서 “일부 잘못한 사람”으로 격하되었잖아.
그건 그에게 엄청난 심리적 완충이었을 거야.
이 시점에 그의 뇌는 “그래, 나도 좀 과했지”로 안정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즉, 죄책감은 있었지만 자존심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누군가 ‘명분’을 주자 그제야 진정된 거야.

이때 그러더군. 자신이 상식 있는 사람이며 잘못된 것을 배우겠다 하더라고


종합 요약적으로 다시 말하면

그 남자는 수치심 → 분노 → 통제욕 회복 → 자기 이미지 복원의 4단계 패턴을 보인 거야.
즉, “나는 잘못한 게 아니라, 내 영역이 침범당했다.”

“이 여자가 나를 모욕했다.”
“그래서 내가 화내는 건 정당하다.”
“결국 나는 상식 있는 사람으로 끝냈다.”

이게 그 사람 머릿속의 내러티브야.




▣ 그 남자 와이프의 심리분석


1. “남편이 이기고 있다” 동안은 조용했던 이유

그 여자는 남편의 싸움을 자기 자신에 대한 싸움처럼 느끼고 있었어요.
즉, 남편의 체면 = 자신의 체면.
그래서 남편이 우위에 있을 땐 “우리 편이 이기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죠.
그 순간 그녀는 ‘관찰자’가 아니라 승리 팀의 관중 상태였어요.
즉, “우리가 이겼다.”라는 심리적 동조감.


2. 그런데 네가 “이 새끼야!” 하며 맞받아쳤을 때

그건 단순한 욕이 아니라, 그 여자의 심리에는 이렇게 들린 거예요:

“내 남편(=우리)의 권위를 부정하고, 모욕했다.”

이건 곧 **그녀 자신의 존재가 공격당한 것처럼 느껴지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on identification)**예요.
그래서 즉각적으로 ‘나를 공격했다’고 착각한 자기 방어로 “미친년”이라는 말을 내뱉은 거죠.


3. “이 미친년!”이라는 욕은 공포와 수치심의 뒤집힌 표현

그 여자는 사실 두려웠어요.
그동안 남편이 통제하던 상황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예상치 못한 여성이 남편에게 맞서니까 — 그건 그녀의 “심리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녀는 “남편은 항상 강자이고, 나는 그 곁에 있다”는 안정감 위에 서 있었는데,
네가 그 틀을 깨뜨리자 공포 → 수치심 → 분노로 전환된 거예요.


즉, “이 미친년!”은 사실

“내가 지금 너무 불안하고, 상황이 무너지는 게 무섭다.”
“하지만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다.”
라는 내면의 비명을 포장한 말이에요.


4. 그리고 즉각적인 ‘동조 방어’

그녀는 남편의 권위에 동조해서, ‘부부 공동체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 거예요.
즉, “내 남편은 잘못 없고, 저 여자가 문제다.”
그걸 말로 선언함으로써 부부 둘 다 체면을 회복하려는 심리.
이건 ‘우리 대 외부인’ 구조로, 군집 방어의 전형이에요.


핵심을 요약하면

그 여자의 심리 흐름을 간단히 도식으로 살펴보면

(1) 남편이 이김 → 나도 안전
→ (2) 네가 반격함 → 남편 위협 = 내 정체성 위협
→ (3) 공포와 수치심 → 분노로 전환
→ (4) “미친년!”으로 방어 + 부부 권위 회복 시도

즉, 그녀는 진짜 화가 난 게 아니라, “남편의 권위가 흔들릴 때 내 세상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에요.


결론적으로
그 여자는 당신에게 욕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의 불안과 부끄러움을 당신에게 투사해서 쏟아낸 것이에요.
당신은 그들의 “심리적 결속의 균열”을 드러낸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에겐 공격 대상이 아니라 “위협 대상”이었죠.


화면 캡처 2025-10-13 155532.jpg








운동은 해야겠는데 그 사람들을 핼스장에서 다시 본다는 생각만으로 기분이 불편해진다. 만약 그날의 헬스장 장면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었을까?

나는 존중·주도권·품격을 동시에 지키는 아래와 같은 ‘위너의 방식’으로 행동했었야 했다.


상황 1 : 텀블러와 핸드폰이 올려져 있는 러닝머신

당신 마음속 대사 : “누가 여기를 맡아놨구나. 하지만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면 안 되지.”


1단계) 조용한 경계선 긋기

“이 자리에 누가 쓰고 계신가요?”
헬스장은 공유공간이기 때문에 먼저 한 번 물어보는 제스처는 ‘사회적 예의’를 취하는 행위이다.


이때 대답하는 사람이 없으면, 직원에게 가서 말한다.

“여기에 물건만 있고 사람은 없는 데 사용 중인가요?”
→ 직원이 대신 정리하게 하면, 당신은 “규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포지셔닝이 되면서 이 순간부터 감정적 공격의 명분이 사라진다.


결과 : 당신의 주도권은 유지되고, 상대는 “내가 규칙을 어겼구나”라고 스스로 느끼게 돼요.



2단계) 그가 나타나서 시비 걸었을 때

“아, 그게 당신 물건이었군요. 저는 여기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직원 통해 옮겼어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공격의 화살이 90% 꺾인다.

“직원”이라는 제삼자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상대는 더 이상 당신 개인에게 화낼 명분이 없어지는 동시에 나는 여전히 “품격을 가진 사람”으로 남게 된다.


결과 : 그는 불편해도 ‘당신이 이긴 사람’으로 보이고, 주변 사람들은 당신 편이 돼요.


3단계) 그가 얼굴을 들이대며 위협하면서 욕을 했을 때 이때 핵심은 ‘정서적 중립성 유지’이기 때문에

“이건 헬스장 규칙 문제이지, 감정 문제는 아니에요.”
“직원분, 잠깐만 와보시겠어요?”


이 한 문장으로 나는 상대를 감정의 세계에서 규칙의 세계로 끌어올리게 된다.
감정싸움에서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규칙의 프레임’을 먼저 잡는 사람은 언제나 이기게 된다.


결과 : 그는 화를 계속 내지만, 그 분노는 공공장소에서 오히려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게 된다. 당신은 조용히 ‘품격 있는 승자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4단계) 아내가 욕을 하며 끼어들었을 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상처받아요.”
“오늘은 그냥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정리하죠.”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며 심리적 성숙도에서 완벽히 우위에 서도록 한다.
즉, 싸움이 아니라 품격의 게임으로 전환됩니다.


결과 :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저분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품위 있게 대응했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매일 하는 운동을 하러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헬스장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와서는 아는 체 하면 어떡하지? 나를 미친년이라고 했던 그 사람의 와이프가 나한테 와서 눈을 흘기면서 다시 미친년이라고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등등 생길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을 상상하다 보니 즐겁게 운동하러 갔던 길이 불편해진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나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유공간에서는 감정보다 원칙, 원칙보다 품격이 먼저이다라는 생각이다. 이런 싸움에서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제 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이 진짜 승자이다. 그러므로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고 혹시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채렸을 때에는 1초, 2초 내 안을 들여다 보고 감정에 올라타지 말고 나를 제삼자 관점으로 보내서 영화를 본다는 느낌으로 대처해야겠다.



#헬스장에서생긴일 #기구맡아놓는사람 #헬스장에피소드 #다툼후성찰 #다툼후심리분석 #그럴수있지


화면 캡처 2025-10-13 15512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개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