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라는 축복을 빌려, 2026년 무대에 다시 도전하다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무대’라는 것을 꿈꾸던 2022년
단순히 점점 늘어나는 나잇살에 거북해진 몸을 느끼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있던 그때, 나는 탈출구가 필요했고 변화를 위한다면 해야할 공부하기, 환경 바꾸기, 외모 가꾸기 중 짧은 시간내 결과를 볼 수 있는 외모 가꾸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웨이트였다.
단순히 시작해서는 작심삼일병에 걸려 포기할 수도 있으므로 안전장치가 필요했고 처음 등록한 헬스센터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바디프로필 100일 이벤트에 도전하여 전체 회원중 3위를 하며 상품으로 비디프로필 찰영비를 지원받아 공직자라는 신분에도 반누드를 찍었다. 여걸인 센터원장이 시키는대로 정신없이 따라하기는 했지만 참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런일이 있은 후 얼마되지않아 센터 원장이 다가와
"내년에는 대회도 나가시죠?" 한다.
하지않은 거 해보는 거 좋아하는 성격이라 '하는 김에 조금더 해보자.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 보다는 쉬울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금의 헬창라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대회에 도전한다는 것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공직자가, 그것도 사무관이 손바닥만한 비키니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무대위에서 이리 저리 엉덩이를 흔들며 포징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품위유지 의무가 있는 공직자가 해도 아래도 되는건가 싶어서, 그리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그러했다.
많은 두려움 속에서 뭔가 동기가 필요했던 시기. 나는 참고 삼아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리는 비키니 대회를 보러 갔다. 그저 관객석에서 다른 선수들의 포징을 눈에 담으려던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마주쳤다. 비키니 종목 입장을 위해 대기줄에 서 있던 내 바로 옆에 서 있던 까맣게 선탠한 팔이 어찌나 가는지 부러질 것 같았던 그 중년의 여성 선수. 그녀가 바로 나의 워너비이자,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김종년 선수였다.
충격, 그리고 깨달음
유튜브나 사진 속 비키니 선수들은 언제나 화려하고 근육으로 우락부락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내 눈앞에서 본 김종년 선수의 모습은 내 편견을 완전히 깨부쉈다.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바짝' 말라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 종이 한 장 차이의 지방도 허용하지 않은 듯한 그 치열한 절제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세상에, 저 정도까지 지방을 걷어내야 하는구나.’
화면 너머로만 보던 근육의 질감은 사실 극한의 다이어트 끝에 남겨진 생존과 투지의 흔적이었다. 근육만이 남아 있는 그 마른 몸이 주는 압도적인 아우라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무대위에 올라섰을때는 내 옆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훨씬 커보이는 것을 알수있었다.
진정한 프로의 세계는 어느정도의 농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그 짧은 찰나에 깨달았다. 그날의 충격은 내게 독한 자극제가 되었고 머신을 당기고 밀 때마다 그녀를 떠올렸다.
"내 밑으로는 다 꿇어!"
최근 김종년 선수와 한은형 선수가 출연한 영상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선명해졌다. 운동을 시작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녀들은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갱년기가 오면 몸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껴요. 호르몬은 이길 수 없지만, 움직임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더라고요."
특히 한은형 선수의 자신감이 인상깊었다. 언제부터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지 쉼게 포기하는 젊은 운동인들에게 지금 당장 운동하라고 하며 하는 말이 "내 밑으로는 다 꿇어야지!"라며 웃어 보이던 그 기개. 그것은 단순히 남을 이기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자부심이었다.
땀 흘리는 것조차 싫어했던 평범한 주부와 무용을 전공했지만 세월의 흐름에 처지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고민하던 여성들이 만나,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며 나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모든이 들에게 공감을 주는 아름다운 시(詩)였다.
10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눈물
영상의 마지막, 10년 후의 자신에게 한마디를 남겨달라는 질문에 그녀들이 대답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껐다. 그녀들이 그리는 미래는 어쩌면 걸어온 날보다 걸어갈 날들이 짧은 그녀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공감을 주는 소소한 것이었다.
"10년 뒤의 은영아, 오로라 보고 있니? 남편이랑 손잡고 두 발로 걸어서..."
두 발로 건강하게 걸어 여행을 다니고, 남편을 업어줄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체력을 유지하고 싶다는 그 소박하고도 위대한 소망. 지금의 땀방울이 10년 뒤의 나를 지탱해 줄 '연금'이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 나의 모습은 10년 전의 내가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오늘 하루의 운동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들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그날 엑스코에서 김종년 선수를 옆에서 지켜보며 받았던 자극 덕분이었을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나 자신을 몰아붙였고, 그해 나의 첫 대회에서 마스터즈 1위, 비키니 2위라는 값진 성적을 거두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깨달았다. 내가 부러워했던 건 그녀들의 조각같은 몸매가 아니라, 그 몸을 만들기 위해 견뎌온 '시간의 무게'와 ;'자신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녀들의 태도였다.
나 또한 그녀들과 함께 나를 사랑하기에 그래서 더 나에게 투자하려 한다. 누가 인정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묵묵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 길을 계속 걸어가려 한다.
훗날 누군가가 대회장에서 내 옆에 서서, 내가 김종년 선수를 보며 느꼈던 그 기분 좋은 충격을 똑같이 느끼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은 정직하고, 보이지 않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주는 힘이 있다.
"이제 다시는 대회 안 나가."
작년 7월, 무대를 내려오며 스스로에게 뱉은 말이다. 하지만 그 다짐은 채 일 년을 가지 못했다. 진통의 고통을 겪은 엄마들이 그 지독한 아픔을 망각하고 다시 아이를 품듯, 나 또한 이 열정의 중독 증세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사실 작년 대회의 뒤끝은 유독 썼다. 스무 살이나 어린 선수들보다 더 밀도 높은 근육을 빚어냈음에도 TOP 3의 벽은 높았다. 나의 스승인 IFBB Pro 트레이너조차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결국 그는 심판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아이러니하게도 '과유불급'이었다. 내츄럴 대회에서 요구하는 기준보다 내 어깨 근육량이 너무 과해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되었다는 것. 노력이 독이 된 그 순간, 허탈함은 이내 묵직한 오기로 바뀌었다.
그 아쉬움이 나를 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올해 나의 목표는 '마스터즈 1위'라는 나이의 울타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당당히 젊은 선수들과 겨루는 '오픈 부문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번 도전의 결은 작년과 다르다. 이제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치열한 경쟁보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조각해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싶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덤벨을 드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귀한 보상이다.
나는 안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나는 또다시 "다시는 안 해"라고 투덜댈지도 모르고, 또 다시 힘든 과정을 망각하고 대회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왜냐면
"내 열정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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