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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Feb 26. 2023

책임 없는 사고일 뿐

수년 전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남녀 사이에 경험한 최악의 이별 방식은 무엇인가?’를 물어본 설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해당 설문 결과에서 최악의 이별 방식 1위는 ‘잠수 이별’이었다.


잠수 이별은 공식적인 이별의 통보 과정 없이 연인 중 한쪽이 그냥 일방적으로 마음을 정리한 체 더 이상의 연락을 끊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별을 인식하지 못한 상대방이 계속 연락을 해와도, 모두 무시하고 연락을 받지 않아 결국 이별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살아오면서 모든 방식의 이별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이 있지는 않을 테니 '잠수 이별'이 다른 어떤 이별 방식보다도 최악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잠수 이별’을 최악의 이별 방식으로 꼽은 것은 이별 경험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 생각해 봐도 충분히 공감 가는 결과다.


스스로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잠수 이별'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할 것 같다.


처음엔 아마 먼저 연락은 하지 않고 내 연락은 받지 않는 상황에 대해 섭섭해질 것이다.

그러다가도 혹시 상대방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할 것이고, 연락이 닿을 수 있을만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수소문하는 경우도 생기겠지 싶다. 

그러다 보면 그 과정에서 경험하게 될 비참한 상황도 예상되지만, 상대가 소위 '잠수 중'이란 걸 알게 된 후에도 지금의 상태가 단순한 '잠수중의 상태'인지 아니면 '최종적인 이별의 상태'인지를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은 더 커져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잠수 이별을 택한 누군가는 상대가 알아서 제 풀에 포기하리라 생각한 것이겠지만, 만약 이별 당한 그 상대는 아직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철저히 약자가 되어 아프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이별의 시간을 감내해야 할 게 눈에 선히 그려진다.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중요한 판단이나 결정된 내용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라면 관계의 우위를 가진 쪽이 상대의 심정을 고려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소통의 과정이 '잠수 이별'처럼 누군가에겐 상처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1년에 한 번 인사평가를 해서 개인별 인사고과를 산정하고 그에 기준하여 연봉인상이나 인센티브 지급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 평가권자와 피평가자 사이에서 평가결과를 통보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매우 신경 쓰이는 절차이다. 


오래전 연공서열에 의해 호봉이 책정되는 시절에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연봉제 도입이 일반화된 지금 시대엔 개인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다양한 지표를 운용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프로야구 선수처럼 타율, 안타수, 홈런개수 같이 객관적으로 개인에게 성과가 귀속되는 수치를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가급적 정량화된 지표를 선호하지만 그런 지표가 적당히 찾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혹시 정량지표를 도입해도 그 수치로 정성적인 가치까지 증명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평가자와 피평가자 사이에 평가의 근거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는 건 참 불편한 과정이 되곤 한다. 

특히 평균적인 수준의 평가를 받는 경우라면 덜하겠지만 우수 고과나 불량 고과를 할당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해당 조직의 평가자와 피평가자 사이에선 고과로 인한 갈등이 생겨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회사의 인사부서에서는 평가자가 피평가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서 결과에 대한 납득이 이뤄지도록 피드백하라고 가이드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심지어 인사평가 결과에 따라 보직을 내려놓거나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사람들에게조차 평가권자가 이유를 설명하는 경우는 쉽게 찾기 힘들다. 


평가권자가 설명하지 않으니 알아서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하는 피평가자 들은 그 이유를 몰라 답답할 수밖에 없고, 한참 동안 그 원인을 자신의 행동 속에서 찾고는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도 스스로 원인을 수긍할 수 없는 사람들은 화병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분노를 내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잠수 이별'과 '인사 평가'에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꽤 있어 보인다.


우선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관계에 있어 쌍방 간에 권력관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평가권자와 피평가자 간의 권력관계야 당연하고,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도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보편적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쪽은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위에 위치한 사람이 침묵하면 강자는 상대에게 설명하거나 소명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강자가 침묵하면 약자가 설명을 요구하더라도 답을 듣기 어렵다. 



무례한 이별을 경험한 사람, 아무 설명 없이 치명적인 평가 결과를 받아 든 사람들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들을 방법은 아마도 없다.


그래서 원인을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원인은 스스로의 귀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깊이 고민할수록 본인에게 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이 과거 교통사고로 아내와 장녀를 잃고 크게 실의에 빠져 있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2컷으로 그려진 만화를 선물했다고 한다.


만화에서 주인공인 바이킹은 자신이 타고 있는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침몰하게 되자, 

신을 원망하면서 하늘을 향해 외친다.

    "Why me? (왜, 하필 나입니까?)"

그러자 신이 그에게 되묻는다.

    "Why not? (왜, 넌 안되지?)"


바이든은 만화를 보고,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는 스스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이 만화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고 얘기했다고 한다.


하긴 그렇다. 세상의 안 좋은 일은 이유가 있어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개인이 어쩌지 못할 다양한 이유와 상황으로 인해 지금도 누군가는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


무례한 이별을 당한 것도 납득 못할 평가를 받는 것도... 

어쩌면 교통사고처럼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걸 받아들이면, 그다음으로는 스스로 이겨내기 위한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난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게 잘 지나가기를 희망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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