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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Feb 28. 2023

당랑(螳螂)의 용기

어린 시절 무협소설이나 홍콩 무술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당랑권(螳螂拳)'은 사마귀의 움직임을 응용하여 만든 권법(拳法)의 이름이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에는 주인공인 팬더 '포' 이외에도 그의 동료인 무적의 오인방(五人幇)이 등장하는데, 이중에도 왕사마귀인 '맨티스'가 포함된 것을 보면 당랑권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유명한 권법인지를 알 수 있다.


'사마귀'를 뜻하는 '당랑(螳螂)'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또 다른 단어로는 '당랑거철(螳螂車轍)'이라는 유명한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있다.

그 뜻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 또는 '사마귀가 수레에 맞선다.'는 뜻이다.


도대체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은데,

일반적으로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큰 힘을 가진 상대에게 덤비는 무모함을 꼬집는 말이라고 해석되어 전해진다.


어차피 수레가 움직이면 그 앞의 사마귀야 깔려 죽는 게 당연한데도 그 앞에서 자세를 잡고 버티니 그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당랑거철(螳螂車轍)'이란 말의 주된 해석은 위와 같지만, 중국 서한 시대의 책인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편에는 그 의미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전해진다.


齊莊公出獵, 有一蟲,

제나라 장공이 사냥을 나가는데 한 마리 벌레가

擧足將搏其輪.

발을 들고서 장차 바퀴를 치려 했다.

問其御曰 “此何蟲也?”

마부에게 “무슨 벌레인가?”라고 물었다.

對曰 “此所爲螳螂者也,

대답했다. “이것은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其爲蟲也, 知進而不知却,

벌레의 습성은 나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고

不量力, 而輕敵.”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적만을 경시합니다.”

莊公曰 “此爲人而必爲天下勇武矣.”

장공이 “이것이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에 용기를 떨쳤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廻車而避之.

수레를 돌려서 피해 갔다.

勇武聞之, 知所盡死矣.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그걸 듣고 목숨을 바쳐야 할 곳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세 줄의 내용 중에는 제나라 장공이 사마귀의 용맹에 감응(感應)하여 미물(微物)에게 경의를 표하고 수레를 돌려 우회(迂廻)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 줄에는 그 이야기를 들은 용감한 무사들이 미물(微物)의 용기에도 경의를 표하는 군주의 이야기를 듣고 목숨을 바쳐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았다고 하는 내용이 함께 전해진다.


사실 사마귀의 경우가 아니라도 우리는 분명한 역부족의 상황에서도 목숨 바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누군가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기어 들어가 목숨 걸고 생존자를 구조한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누구나 알지만 그 누군가는 기꺼이 사람을 구하려 자신의 목숨을 건다.


다른 누군가는 압도적인 전력차로 패배가 예상되는 전쟁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심지어 타국에서 생활 중이던 사람들마저 나라를 지키려 전쟁의 포화 속으로 찾아 들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알리고 관철시키기 위해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어 자신의 결의를 알리기도 한다.


아무리 역부족인 상황에서라도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가 감히 무모하다고 쉽게 판단해서 그들의 행동을 폄훼할 수 있을까 싶다.


어차피 안 될 일에 목숨을 건다고...,  무모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고...,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살아가다 보면 당연하고 편한 것만 쫓아 쉽게 예상되는 결과에 줄을 서는 게 현명해 보일 때가 많지만..., 그래서 적당히 남들의 생각에 맞춰 대세를 따라 행동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지만...


분명한 건 세상이 항상 그렇게 예상되는 결과로만 움직이진 않고, 어떤 경우엔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되는 도리(道理)도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마귀의 용기를 높게 평가했던 제장공(齊莊公) 같은 사람보다는 그런 모습을 무모함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세가 된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목숨 건 도전 앞에 숙연하게 될 때도 있지 않은가?


틀에 박힌 해석으로 당랑(螳螂)의 용기를 무모하게만 보지 않았으면, 힘 없는 사람들의 목숨 건 사연에도 관심갖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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