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랜덤초이 Mar 03. 2023

비유(比喩)의 기술

'수사학(修辭學, rhetoric)'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사(修辭, rhetoric)'는 본래 청중을 앞에 둔 사람의 웅변술을 뜻하는 것으로, 어떤 생각이나 주장을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술(art)을 의미하며, 표현과 설득에 필요한 다양하고도 능란한 방식에 대한 숙달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였던 기원전에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학자에 의해 학문적으로 연구되었다고 하니 그 필요와 효용이 얼마나 오랜 근원을 갖는지 잘 알 수 있다.


수사(修辭, rhetoric)의 방법 중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표현하기보다 비유적으로 다른 대상이나 상황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을 비유법(譬喩法, Figures of Speech)이라고 한다.


비유법은 대개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나 표현을 타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타인이 당연히 알고 있는 이미지나 우화 등을 예로 들어 쉽게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고인(故人)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1979년 당시 여당 의원들이 주도하여 그의 의원직을 제명하자, 자신의 투쟁 의지를 밝히며

"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는 이 말은 정적을 탄압해도 민주주의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란 점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켰고, 아직까지도 유사한 상황에서 종종 소환되곤 하는 대표적인 비유의 표현이다.


분산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투자 격언으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말도 있다.


이 역시 살다가 실수로 계란을 깨트려 본 사람이라면 왜 분산투자가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멋진 비유이다.


이 밖에도

"시간은 금이다." – 시간의 소중함 ≒ 금에 비유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 강자 고래, 약자 새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 새 술  새로운 일, 새 부대  새로운 체계


"숲을 보고 나무를 봐라"- 숲  전체, 나무  개별 등등


적절한 비유를 통해 전달된 많은 격언들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어 본래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반면 어느 경우엔 비유의 기술로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본래의 의도만큼 설득적인 효과를 갖기 힘들 때도 있다.


일전에 회사에선 신규 서비스 출시를 거세게 몰아붙였던 적이 있었다.

출시 자체를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로 관리하다 보니 수많은 서비스가 만들어졌지만, 서비스 운영을 위한 마케팅과 보완 개발 등에 필요한 인적, 물적 리소스는 제한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출시된 서비스가 사용자를 늘리며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CEO는 서비스를 출시한 부서들의 운영 미흡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비유를 활용해 질타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으면 그게 부모냐?"


CEO의 강한 질타 이후에 관리부서에서는 각 서비스마다 ‘아빠(사업팀장)’와 ‘엄마(개발팀장)’의 이름을 표기해서 관리하도록 하는 일이 진행되었다.

즉, 누구의 책임인지를 명확히 하면 그 사람에게 챌린지 할 수 있다는 수준의 대응이었던 셈이다.


서비스 운영을 육아(育兒)의 중요성에 빗대어 설명한 의도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필수적인 리소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책임만 더욱 강하게 관리하는 방식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현장에선 CEO의 비유를 차용하여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생겼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보채더니 낳아놓으니 육아의 책임을 독박 씌운다"는 얘기였다.


육아의 책임을 사회 공동의 노력이 아닌 부모에게만 온전하게 지우는 국가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OECD 회원국 중 합계 출산율 꼴찌(0.78)가 된 우리나라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해당 사례로 비유되었던 회사의 신규 서비스 역시 낮아진 출산율과 비슷한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라면 비유의 대상 자체는 적절했지만, 메시지에서 주장된 문제와 해법 사이에 인과 관계(因果關係)가 부족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나라 전체가 시끄러울 정도로 비유법을 활용한 여론 설득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누군가는 배임의 죄를 설명하기 위해 ‘휴대폰 영업사원’을 비유하고, 또 누군가는 수사의 불공정성을 호소하려고 ‘오랑캐의 침략’을 비유한다.


어차피 정치적 판단을 마친 사람들에게는 그런 비유의 기술이 먹히지 않겠지만, 아직까지 판단을 미뤄왔던 사람이나 바꿀 수 있는 사람들에게라면 저런 비유의 기술이 어느 정도 효과로 나타날지 참 궁금하기는 하다.


직접 민주주의가 발전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각종 기술이 학문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당연한 결과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다수의 여론을 형성해 권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유를 비롯한 다양한 수사적(修辭的) 기술을 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잘 알려져 있듯 과거 그리스 시대 당시 '수사학(修辭學, rhetoric)'은 '영혼을 흐리는 궤변(詭辯)'이라고 혹평을 받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우리가 맞닥트리는 여러 비유의 말들 역시도 모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는 힘든 주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설득의 기술' 만큼이나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의 기술적 궤변으로부터 '설득되지 않을 기술' 역시 우리에겐 꼭 필요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당랑(螳螂)의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