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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Mar 08. 2023

바보도 경영하는 회사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주식 시장이 좋지 않다.

나처럼 평소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투자원금(投資元金)을 회수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 쉽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매일매일(每日每日) 시시각각(時時刻刻) 주가 변동을 신경 쓰고 지내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수시로 트레이딩 시스템을 쳐다보고 거래 타이밍을 재는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고, 같은 이유로 가상화폐 투자 열풍에도 참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량종목에 투자해서 장기보유(長期保有)하라고들 하지만 일단 투자를 하면 관심을 내려놓을 무덤덤함이 부족하다는 게 나의 맹점(盲點)이다.




주식 투자를 하지는 않지만 투자와 관련한 금언(金言)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참 많이 들어봤다. 대부분의 투자격언(投資格言)은 주식 투자의 영역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생활 속에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지혜가 담긴 얘기들이었다.


특히 투자와 관련해 많은 명언을 남긴 사람으로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가장 대표적이지 않을까 한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가치투자자(價値投資者)인 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자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불릴 정도로 투자에 대해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전략 부서에서 일하며 기업경영과 관련한 CEO의 역할과 영향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나는 이에 관한 글들을 자주 찾아보곤 했다.  

그러다가 워런 버핏이 그의 투자 원칙을 이야기하며 '기업 투자와 CEO 역량 간의 관계'를 언급한 하나의 문장을 접하게 되었다.


"I always invest in companies an idiot could run, because one day one will."

(나는 항상 바보도 경영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한다. 왜냐면 언젠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Warren Buffett -


그의 말은 CEO가 어떤 사람이 되던지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찾아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평소 "회사는 사장(CEO)의 그릇 크기만큼 성장한다."는 말에 익숙하던 나에게는 생경한 표현일 수밖에 없었다.

최고경영자의 역량으로 기업 성장의 한계가 정해진다는데, 다른 한편으로 바보가 최고경영자가 되어도 성과가 날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져서이다.


그래서 과연 바보라도 경영할 수 있는 회사란 어떤 회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CEO는 회사 내부의 그 누구보다도 경영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나도 어느새 7~8명의 새로운 CEO를 경험하다 보니, CEO가 교체되면 회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CEO가 어떻게 회사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 듣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 알게 되었다.


경험상 바보가 경영을 하면 회사엔 분명히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회사라니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하는 호기심은 더 커졌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쩌면 그런 회사라면 개인의 리더십에만 의존하지 않고 각 조직의 자율적 실행이 자리 잡은 회사를 말하는 건가 생각되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는 임직원들이 있는 회사라면 CEO가 바보라도 기업이 충분히 제 몫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회사라 하더라도 CEO가 마음먹고 부지런하게 바보 같은 지시를 내린다면, 아마도 결국은 좋은 성과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제 아무리 자주적인 임직원이라 해도 결국 CEO의 지시를 무시하고 본인의 판단으로만 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CEO의 전제적(專制的) 권력 남용(濫用)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되는 회사를 얘기하는가 생각도 되었다.

Check & Balance 시스템에 의한 견제(牽制)가 작동되고, 숙의(熟議) 절차(節次)가 준수되어 그릇된 의사결정을 거를 수 있다면 CEO가 바보라고 해도 기업은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업은 현실적으로는 참 찾기 어려운 또 다른 의미의 유니콘 기업이지 않을까 싶다. 대체로 그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제도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개입하는 영역이고 그 과정에서 바보 같은 CEO의 영향력이 작동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복잡한 생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건 워런 버핏의 직업을 떠올리고서이다.

투자자(投資者)인 그로서는 바보 같은 CEO가 경영을 해서 회사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면 투자를 회수(回收)하면 그만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는 그 스스로가 밝힌 투자 원칙을 지킬 테니  말이다.


오히려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투자를 지속할지 회수할지 결정하면 되는 투자자가 아니라 '해당 회사에 취업해 근무 중인 임직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다.


자신이 몸 담은 회사의 CEO가 새롭게 바뀌고 나서, 바보 같은 CEO로 인해 회사의 활력과 성과가 감소하고 투자가치를 잃어가는 기업이 되어간다면 임직원들에겐 어떤 선택이 있을까 싶다.


"나는 항상 바보라도 경영할 수 있는 회사에서만 근무한다."


매번 쉽게 사표 쓰고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다른 회사를 찾지 않는 이상, 투자자를 흉내 낸 이런 원칙은 실현 불가능할 텐데 말이다.


기업에 돈을 투자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의탁해 저당 잡힌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누군가 올바른 선택지를 제안해 줄 수 있는 현인(賢人)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되었다.


혹시라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CEO는 성과에 따라 회사를 거쳐가는 사람이고, 직원은 회사와 함께 성장해야 하는 사람이니 짧게 판단해서 손쉽게 회사를 손절(損切)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야겠다.


회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경영자에 대한 신뢰와 완전히 일치시켜 생각하지 말라고, 게다가 기업의 운영에 대해서는 CEO가 아닌 임직원의 책임도 크니 말이다.


비록 현인(賢人)은 아니지만 먼저 고민을 겪은 사람으로서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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