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시작해 한창 일을 배우던 나의 주니어 시절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금과 달리 토요일에도 출근해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야근은 밥 먹듯 당연하고 철야도 간간히 경험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나 역시 그게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지냈었다.
지금처럼 PC-OFF 가 있는 시대도 아니다 보니 야근은 늘 상사가 만족할 때까지 늘어지는 게 일쑤였지만
근무에 대해 초과근무 수당 등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근무하던 부서는 강한 업무부담에 대한 반대급부와 같이 저녁 식사는 늘 좋은 음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잦은 야근에 대해 작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야근이 잦은 모든 부서가 그렇게 저녁 식사를 풍족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 팀이 유독 식사 비용을 아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당시 조직장이었던 임원분의 영향이 컸다.
그 임원분께서는 팀원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많이들 먹어요 여러분이 잘 먹고 열심히 일하는 게 회사에 남는 거야”라는 말씀과 함께
“나는 직원들이 밥 많이 먹어서 망했다는 회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회사가 힘들어지는 건 경영진의 전략이 문제일 때이니까. 여러분은 그냥 잘 먹고 열심히 일해주세요”
수십 년 전 그 임원분이 해주신 얘기가 여전히 기억되는 건 그때 밥을 잘 먹어서 때문이 아니다.
나 역시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분의 말씀이 정말 맞는 사실이었구나 하는 공감을 하게 되어서이다.
진짜로 나 역시 꽤 오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직원들이 밥을 많이 먹어서 회사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다. (반대로 회사가 위기이니 조직활성화비를 줄이자는 얘기는 자주 들어봤다.)
대신 경영진이 무책임하거나 무지한 전략을 밀어붙여 회사가 힘들어지는 경우는 숱하게 듣고 보았고,
직접 겪어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밥보다 전략이 문제'라는 결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사실 회사에는 직원들이 아무리 비싸고 좋은 밥을 많이 먹으려 해도, 이런 일들이 큰 낭비로 이어지기 전에 견제할 수 있는 각종의 장치가 있게 마련이다.
그게 규정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든 직간접적으로 견제가 작동하여 과도하게 낭비가 발생하는 경우를 제어하게 된다.
하지만 경영진이 무지해서든 의도를 갖고 하는 일이든, 문제 있는 경영전략을 밀어붙이면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견제가 작동되기 힘들다.
경영진의 무모한 전략은 그 추종자 내지는 동조자들에 의해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되기 마련이고, 그게 문제가 있거나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얘기하는 사람은 도태되고 무시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추종자나 동조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도 저도 아니면 방조자가 되어 생존을 모색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조직은 상사인 경영진의 의중에만 관심을 갖고 진짜 고객과 시장에서는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뭐 회사라는 조직 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어느 조직이든 사람이 모이고 권력이 존재하는 집단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되풀이되고는 한다.
견제의 수단이 없는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브레이크나 안전벨트가 고장 난 차를 운전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신호등도 없고 탄탄대로인 평지를 여유롭게 달릴 때는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겠지만,
수시로 가속과 감속을 해야 하고 내리막길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브레이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안전벨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브레이크가 있는 차에 타고 있는지, 운전사는 대체 안전벨트를 메고 있는 건지 가끔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