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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Nov 05. 2023

분실(紛失), 약간 지난 후

 일기, 사진으로 일상을 갈무리하던 버릇이 예전 습관이 됐다. 요즘엔 어떤 걸 잃어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좋은 습관, 따듯한 마음, 이젠 회상이나 추억 같은 관성이 그 자리에 있다. 덮어놓고 지낸다.


 Y역 옆으로 난 골목들을 걷다 보면 간판 낡은 피자 가게, 현수막 뜯어진 지하 피트니스 센터들이 있다. 포장하면 30% 할인, 등록하면 몇 개월 무료. 바뀐 세상에 안달 난 그때 것들. 요즘 세상은 오죽하다.



 K의 소식을 들었다. 자기가 버린 걸 다시 찾고 있다고. 시간 지나면 익숙해질 줄 알았던 것, 슬금슬금 피했던 것, 그것들을 다시 볼 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호랑이 같던 K는 자기를 잃어버렸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나를 안아줬던 기억이 자주 난다. 인간 중심 사고를 비판하면서도 내 기억은 내 위주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내가 상처 줬던 것들도 모두 기억해라…. 잃어버린 것들을 일러 준다면 울면서 손바닥이라도 맞고 싶다.



 췄다, 섰다 한다. 옷을 사고 싶다가 사기 싫고, 맛있는 걸 먹고 싶다가 먹기 싫고. 산책하면 맘 놓였다가 모르는 길에 머물고, 이불 속은 따듯하다가 식은땀. 대작(大作)이 나올 것도 아닌데 몸살이 가실 줄을 모른다.


 꿈이 다시 오려나. 전화기를 붙들고, 예전 사진들을 붙들고. 친구가 사 준 책을 읽다 어느 문장 앞에 멈춘다.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써야 하는 글, 실패에 대한 예감 없이는 쓸 수 없는 글, 자꾸만 연막을 치고 안개를 피우고…'. 그 분실 직후 불안감.



 가 잃어버린 건 뭘까. 찾았다, 놓쳤다 한다. 변죽거리기 싫은 맘이 내 본심보다 앞선다. 길 잃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지는 이유가 거기 있을까.


 이른 주말 아침, 오랜만에 B와 연락한다. 멀리서 지켜보던 B의 일상에도 나와 같은 분실이 있다. 나를 지켜 준 8개월의 요가를 회상하며 간신히 잃어버린 것을 떠올린다.


 분실 약간 지난 후, 희미하게 생각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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