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대

by 김승일

리만 차지할 것 같아서 빨랫대 없이 지냈다. 귀찮아서 안 샀던 것들, 안 했던 것들이 있다. 해 보니 편하고 자리 차지도 적다. 숨길 데도 많다. 아직 그런 게 더 남았다.


언젠가 해야지 미뤄놨던 것들이 어느 순간 너무 많아졌다. 이젠 그게 어떤 것들이었는지도 까먹었다. 고작해야 사소한 것들. 일본어 공부, 봐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책, 덜컥 사 버린 악기 배우기. 당장 급한 전자레인지도 3년째 있을 자리에 없다. 집에서 밥을 잘 안 먹는 이유는 바빠서가 아니라 전자레인지가 없어서다.



고 싶은 게 전보다 적어지고, 꿈도 전보다 작아졌다. 여기저기 정신 상태를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게 적어진 건 우울하다는 신호다, 같은 말을 쉽게도 한다. 겁을 먹고 군살 빼듯 덜어내려 보니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꼭 번아웃이 아니듯이.


허겁지겁 나가는 출근길, 차 창문 밖으로 비가 내려 여행 가는 기분이 든다. 습관처럼 듣던 음악도 됐다 싶어서 바퀴 굴러가는 소리들을 듣는다. 빠르게 빠르게 구르는구나. 남들보다 늦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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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에 모래알이 생겼다. 좋아하는 가수의 에세이를 사놓고 아직 다 읽지 않은 상태라 다행이다. 진주는 모래알이 조갯살에 박히면서부터 시작된다는데, 조금 모질어도 일단 서있어 본다. 매일 내리는 햇살이 괜히 야속하다가, 고맙다. 미안하다.


이제야 웃는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참, 빨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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