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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Jun 01. 2024

사촌동생의 결혼식

결혼할 결심, 결혼하지 않을 결심


오래간만에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결혼식을 보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의 주인공은 셋째 이모의 아들, 서열상으로 따지면 전체에서 넷째쯤 되는 사촌동생의 결혼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첫째고 나도 첫째이기 때문에, 외갓집에선 내가 가장 언니(누나)다. 나이순으로 따지면 사실 결혼을 내가 제일 먼저 했어야 맞지만 나 포함 내 동생, 그리고 삼촌의 아들까지 No.1~3가 미혼인데 별안간 No.4가 새치기를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결혼 생각이 없었으므로 '새치기'보단 순순히 순서를 내어줬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할머니가 늘 바라던 '증손주'에 대한 부채감을 이 친구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고맙기까지 하다.


결혼식장은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느낌이었는데, 전체적으로 하객의 연령대가 낮고 친구들이 많이 와서 그랬던 것 같다. 신랑신부가 대학교 CC였고, 30대도 되기 전에 이른 결혼을 하기 때문에 과동기들이 단체로 와서 축하해 주는 풍경이었다. 그들의 젊음에 "좋을 때다" 하고 부러움이 들면서도, 어쩌다 이들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결혼을 결심하게 됐을지 순수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면서 반대로 내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부터 생각해 봤다. 내 주위에 그다지 본받고 싶을 만한 '성공모델'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만약 주위에 주식 투자를 잘해서 돈을 번 사람이 많다면, 당연히 나도 주식 투자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주위에 주식 투자를 실패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면? 그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아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에겐 '결혼'이 그렇다. 애석하게도 내 주위의 어른들은 결혼을 잘 못했다. 모두 결혼생활이 불행했으며, 이혼을 하거나 또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을 것처럼 살았다. 나는 회피적 성향이 있어서, 리스크가 큰 위험한 것은 절대 도전하지 않는다. 난 '결혼'이 매우 '하이 리스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나보단 결혼을 '할만하다'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아마 주위에 결혼한 어른들이 가끔 싸워도 그럭저럭 해결하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면서 오늘 결혼한 사촌동생과 나에게 각각 어떤 롤모델이 있는지 떠올렸다. 바로 나의 아빠와 셋째 이모부가 떠올랐다. 그 둘을 비교하자 거기서부터 나와 사촌동생의 선택이 갈렸으리라 직감했다.


나에게 있어 결혼이 가장 공포스러운 점은, 내가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 엄마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빠는 정말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유대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가족'이란 자신에게 늘 깨끗한 장소와 맛있는 집밥, 필요한 자원들을 제공해야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벌어온 돈을 나누거나 투자하는 것은 극도로 아까운 존재들인 것 같았다. 하다못해 사기꾼들도 지 가족 먹이려고 남들을 등쳐먹는데, 아빠는 남들을 위해 (그것도 고작 가벼운 일회성 관계들을 위해서라도) 늘 가족을 희생시켰다. 아빠에게 가족은 가장 후순위였고 늘 자신이 언제든지 쓰다 버릴 자원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 학창 시절 유일한 소원은 아빠가 한 번이라도, '자기 가족만 생각한다'면서 바깥에서 욕을 처먹는 것이었다. 


반면 셋째 이모부는 이런저런 단점은 있어도 (적어도 내 눈에는) 늘 '자기 가족'이 가장 우선인 사람처럼 보였다. 모든 걸 다 차치하고라도 셋째 이모만이 여러 이모, 삼촌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어쩌면 사촌동생은 그런 이유로 나보단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나 또한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더 결혼에 열려 있진 않았을까?


결혼도 안 하는 주제에, 감히 K-자식으로서 우리나라의 '저출생' 풍조에 대해 고민해 본다. 자식들은 부모를 답습한다. 특히 딸에게 엄마의 결혼생활은 자신의 미래로 그대로 그려진다. 가정에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남편은 (물론 아내도) 미래의 자식들이 결혼을 하지 않게 되는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결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처럼 살기 싫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다음 세대가 결혼을 하게 하려면 나쁜 아빠들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맨날 고성이 오가는 집 한복판에서 우는 엄마를 보고 자란 딸들은 도저히 결혼을 결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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