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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Jul 10. 2024

10년 만에 만난 동료 언니

진짜 언니다움


지난달, 뜻밖의 인물에게서 연락이 왔다. 바로 10년 전 내가 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때, 같은 지점에 있었던 대리님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심 그때 그 지점에서 같이 일했던 분들이 어떻게 살고 계신지 안부를 묻고 싶던 터였는데, 내 마음이 전달된 건지 어떻게 알고 먼저 연락이 와서 너무 기뻤다. 그전에도 카톡으로는 안부를 몇 번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대리님'이라는 칭호가 부담스럽다고 '언니'라고 불러달라는 것이 기억났다. 여튼간 늘 외롭고 소외되어 있었던 나에게 '언니'의 연락은 반가웠고 고마웠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7월 6일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는데, 언니가 특별하게 롯데월드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도 요새는 거의 가지 못했지만, 대학생 때만 해도 꽤 좋아했고 오랜만에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동의했다.


언니가 매직패스 구매에 성공한 덕에 우리는 아틀란티스도 2번이나 타고 후룸라이드, 후렌치 레볼루션 등 인기 놀이기구를 원 없이 탔다. 중간에 자이로스윙을 타서 살짝 어지러웠다는 것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하고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언니와 중간중간 나눴던 많은 대화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건진 몰라도, 언니가 기억하는 나는 많이 미화되어 있었다. 난 그때 23살이었고 첫 사회생활이었던지라 모든 것에 미숙했는데, 지점 식구들이 잘 도와준 덕분에 별 탈 없이 1년 2개월 동안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는 반대로 내가 본인을 잘 도와줬던 것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오랜만에 만난 날 작정하고 띄워주려는 건지, 내가 그 당시에 센스가 너무 좋았다고 계속 칭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젠가 언니가 사업을 하게 되면 날 채용하고 싶다고도 말해왔다고 했다. 늘 회사에서 지독한 자기 검열에 시달리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나로서는 언니가 그렇게까지 생각했다는 게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한편으론 내가 23살이었기 때문에 관대한 평가를 받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다 사건이 하나 생겼다. 마지막 남은 매직패스 한 자리로 혜성특급을 타려고 했는데, 그만 우리가 타고 있던 놀이기구가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본격적인 운행 전, 시작지점에서 멈춘 것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우리는 그 일로 놀이기구에서 바로 하차하여 기다렸어야 했고, 혹시 모를 안전성 점검 때문에 몇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놀이기구 운행은 재개되지 않았고, 우리는 보상으로 매직패스 이용 1회권을 추가로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너무 피곤했고 (자이로스윙의 여파가 컸다), 이미 탈만한 놀이기구를 다 타서 더 이상 타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추가로 받은 매직패스가 아까워서 누군가에게 팔거나 억지로라도 뭘 하나 더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언니가 그냥 애들이랑 온 가족들에게 양도하자는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난 나에게 매직패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처리해야 할 '짐'에 가까웠는데도 누군가에게 공짜로 주려는 생각은 선택지에 없었다. 그러나 언니의 의견대로 어떤 가족에게 선물처럼 줘버리고 나니, 너무나 후련하고 뿌듯했다. 기꺼이 주는 것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난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0년 전 잠깐 만난 인연에게도 먼저 연락해 주는 따뜻한 정, 사람이 많고 습해도 짜증 내지 않고 평소보다 낫다며 좋아하는 긍정적인 태도,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본인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나를 띄워주고 칭찬하던 모습, 당장 본인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남에게 선뜻 양보하는 쿨함과 멋짐 등등.


나는 늘 나보다 어린 동생에게, 존경받는 언니나 누나가 되기 위해서 내가 그들보다 더 앞선 것들에 대해 드러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알량한 지식, 얼마 없는 돈, 별 것 아닌 경험들. 하지만 그것들은 필히 얼마 안 가 밑천을 드러냈을 것이며 이런 나를 진심으로 동경할 동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언니를 통해 내가 연장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아량이 넓고 따뜻해져야만 한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재테크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저런 것들이 바로 '언니'같은 점이란 걸 이번에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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