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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Aug 22. 2024

유전은 한꺼번에 온다.

장점도 단점도 모두 그녀에게서


오늘 입사 이래 처음으로 본부장님과 1:1 면담을 했다. 늘 너무 바쁘신 분이라 실장님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만 본부장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면해서 직접 나에 대한 평가를 들으니 기분이 색달랐다.


역시 그는 다정하신 분답게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창의력이 있고 행동도 빠릿빠릿하다며 치켜세워주셨다. 빈말이겠거니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이내 면담의 목적이었을 나의 단점도 같이 언급되었다. 타 부서와의 갈등에서 데미지를 크게 입고 그 부정적 감정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부끄럽게도 너무 맞는 말이었다. 불과 이번주만 해도, 제대로 업무 협조를 해주지 않는 지원부서 팀장이 너무 미워서 짜증도 엄청 냈고 그 사람에 대한 욕도 질리도록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잠깐 그러고 말아서 괜찮았다지만, 올해 3월에는 자꾸만 끓어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이미 브런치에도 여러 번 언급했을 정도로 큰 일이었는데 지원부서 팀장이 내게 오해해서 전화로 막말을 한 사건이었다. 그 사람이 백번 잘못한 것을 알고, 다들 나를 똥 밟았다고 위로해 주는데도 화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마음 같아선 다른 공장에 있는 그 사람을 찾아가서 해코지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당연히 그럴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나는 그 감정을 어설프게 참다가 병이 났다. 그 이후 약 3주간 누가 사소한 말만 해도 서러워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걱정했고, 결국 나는 심리상담까지 받았어야 했다.


그 당시 심리상담사는 내 서러움의 원인을 이렇게 해석했다. 다소 통제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내 의견이 정상적으로 관철된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의견이 묵살당했을 때 (그것도 윗사람한테) 서럽고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정말 통제적이었다. 가르마 방향부터 신발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정해주려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투덜거리는 사람이었다. 당연히도 난 그런 엄마와 늘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난 엄마처럼 남을 바꾸려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 분노와 슬픔의 원인은 사실 내가 그런 엄마를 닮아 나 또한 통제적이기 때문이었다. 난 남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통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었다. 그러나 난 엄마보다도 악질인 게 말하지 않았으면서 상대방이 내 뜻대로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좌절되었을 때 멋대로 실망해 버리는 것이었다. 애초에 상대방은 그렇게 해줄 마음조차 없었는데.


엄마랑 늘 싸우는 것도 엄마와 내가 둘 다 통제적이기 때문이다. 난 엄마가 나를 바꾸려고 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엄마를 자꾸 내 입맛대로 바꾸려 든다. 엄마가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을 무시하고, 내가 옳다는 생각대로 엄마가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자꾸 본인이 원하는 것을 관철하려 할 때, 나는 '통제적인 것은 옳지 않다'는 내 가치관에 반하는 것 같아서 엄마를 원망하게 된다. 


오늘도 사실 본부장님이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내 단점을 다시 한번 짚어주셨을 때, 솔직히 속으로 엄마 탓을 하고 싶었다. 통제적인 환경에서 자라게 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결국 나도 누군가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엄마가 미웠다. 그 밖에도 난 엄마가 종종 나에게 안 좋은 것들만 물려줬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내 내 장점이라던 창의성 또한 그녀의 것임을 깨달았다. 본부장님이 말한 내 창의성이란 뜻밖의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능력을 뜻한다.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은 작은 것에도 쉽게 화내고 서운해하고 사람들을 의심하게 하는 인간관계에 있어 최악인 성향이지만, 주변의 조그만 일들도 면밀히 관찰하고 캐치해서 다른 문제상황에서 꺼내서 쓸 수 있는 창의력의 근본이 되기도 한다. 아마 삶의 작은 것 하나도 모두 통제하려고 했던 엄마의 마음 내면에도 예민함과 불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그런 성향을 잘 살려 직장에서 매우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으로 일하고 있다.


난 엄마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닮았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처럼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좋으나 싫으나 그녀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본부장님이 그러셨다. 나의 단점인 예민한 성정은 회사생활을 많이 하다 보면 서서히 무뎌지거나, 경험이 쌓여 지혜롭게 넘어갈 수 있게 되겠지만, 나의 장점인 창의성은 타고난 부분이라 후천적으로 학습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난 이제 불안했던 과거의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반대로 엄마에게 고마워하려고 한다.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뿐만이 아니라, 섬세하고 상상력이 많은 성격도 모두 물려줘서. 엄마, 고마워. 엄마를 따라서 단점은 극복하고 내 장점을 극대화하는 멋진 직장인이 되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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