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집사의 실수
3. 인고의 시간
고수 씨를 물에 불린 지 고작 이틀 만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싹트는 건 맞겠지?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씨앗이 썩어버리거나 곰팡이가 나면 어떡하지? 싶어 거의 1시간에 한 번씩 못 참고 휴지를 들춰댔다.
그리고 물 온도가 미지근해야 할 텐데, 바깥의 폭염으로 9월 중순까지 에어컨 바람이 내리던 사무실 안은 오히려 너무 추웠다. 그 에어컨 바람을 직빵으로 맞고 있던 휴지도 금방 시릴 정도로 차가워지자, 도저히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님과 상의하여 위치를 옮기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탕비실에 있는 냉장고 위. 에어컨 바람이 닿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냉장고의 온기가 타고 올라와 따뜻할 것 같았다. 다만 다소 괴랄(?)한 비주얼에 쓰레기인 줄 알고 누군가가 버릴까 걱정됐다. 그래서 이름까지 지어서 포스트잇을 붙여놨다.
‘고수가 자고 있어요~ 건들지 말아주세용 -김고수’
그리고 그 상태로 주말을 보내고, 또 마른 휴지를 새로 갈아주면서 며칠을 더 보냈다.
추석이 끝나고 바로 출근하여 불리기 시작했으니, 흙에 심기까지는 꼬박 일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4. 흙을 믿어보기로 했다.
씨앗을 사 와서 물에 불린 지 약 일주일째.
기대한 것과 같은 초록빛 싹은 트지 않았지만, 일부 씨앗들에서 하얀 선 같은 심지가 돋아나는 게 보였다. 너무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것이었지만, 매일같이 쉴 새 없이 휴지 안쪽을 들춰보던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변화였다.
결국 식집사 1호 과장님과 상의하여 심지가 돋은 애들 위주로 먼저 흙에 심어 보기로 했다. 아무렴 흙이 주는 힘이란 게 있지 않을까. 제 아무리 싸구려 퍼석한 흙이라 할지라도 뿌리내릴 기반은 있어야 씨앗들도 맘 놓고 클 것 같았다.
한 가지 초보가 실수한 점은, 처음부터 씨앗을 너무 많이 불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 씨앗들은 죽고 도태할 것을 예상해서 생각보다 많이 씨앗을 불렸는데, 그중 반절 정도만 먼저 심었는데도 양이 꽤 상당했다.
게다가 고수는 자라나는 공간이 필요해서, 씨앗끼리 공간을 두고 띄엄띄엄 심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심지가 돋은 애들만 화분에 심었는데도, 씨앗은 너무 많고 화분은 너무 좁은 관계로 결국 고수들은 제 퍼스널 플레이스를 보장받지 못한 채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 자라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