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같아요~
얼마 전 레슨을 받다가 선생님한테 들은 나의 인상이었다. 새로움을 시도하는 모습이 아마도 그렇게 느껴지셨을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문장이었다.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전 틀에 박힌 영혼이에요~^^ 그런데 이젠 다르게 살려고요.
좋아하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현재 진행형! 언제쯤 취향이 또렷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안 해본 걸 하나씩 소소하게 쌓아가고 있다.
예전엔 해보고 싶은 게 없는 게 고민이었다. 뭐든 늘 막막했다.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 게 뭔지 몰라서 타인의 취향을 따라한 적도 있었다. 줄이 길던 맛집 탐방, 인기 많은 동네 투어, 패션 따라 하기 등등.
요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자꾸 쌓여간다는 게 막막하다. 반전 모드!
집에서도 할 게 많고, 코로나 시기의 외로움이 ‘소소한 바쁨’으로 잊히고 있다.
사람에겐 다양한 모습이 있고, 팬데믹 시기에 나도 모르던 새로운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VS
자리가 사람을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소소한 변화가 시작된 나를 따라한 사람이 있었다. 케이도 브런치 작가를 하고 싶어 했다. 자꾸 탈락한다기에, 글 구성에 아이디어를 주었고, 합격했다. 그리고 그다음엔 피아노를 배울 거라고 질문을 했다. 유기농 채소를 사던 내 말투가 케이의 입에서 나왔다. 케이의 말과 카톡 메세지는 어디서 많이 본 듯(?) 했다. 나에게 네이버 지식인처럼 수시로 질문하는 케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도움을 주곤 했다.
케이는 어떤 도움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어떤 날은 내가 쓰던 문장을 다른 사람들 사이에 따라 쓰기도 했다. 무심코 넘겼지만, 싸했다. 코로나 유행이 심해지던 시기에도 주말마다 서울을 오고 가는 장거리 이동객인 나를 코로나 확진자(?)처럼 대하는 케이의 돌려 표현하기가 시작됐다. 출장 가는 남편을 걱정하는 듯, 돌려서 나를 겨냥한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헉, 12월 말, 탄천 산책을 하자고? 실내는 걱정 되고, 만나고는 싶었던 걸까? 점점 알 수 없는 케이.
만나면, 사람 좋게 웃기만 하던 케이가 점점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케이는 재테크에 성공했다. 결혼 10년 만에 원하던 학군 좋다는 동네 입성에도 성공했고, 본인, 남편의 커리어도 안정을 찾았다. 계획한 대로 이루었다. 단 하나, 바쁜 생활과 목표로 취향, 취미가 없었다.
여유와 안정이 생기고 취향을 쌓아간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난 케이가 부러웠다. 목표도, 결과도 명확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점점 내가 알던 케이와는 달랐다. 본인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찮게 말했다. 사람이 도구로 느껴졌다. 오랜 시간 알아온 케이의 새로운 모습에 놀랐다. 실망이 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걸까? 아님, 자리에 오르니, 그 사람 안에 잠재된 모습이 나타나는 걸까?
사람 안에는 다양한 얼굴이 공존한다. 상황이 바뀌면, 다양함이 비로소 밖으로 표현된다. 낮엔 보이지 않던 밤하늘 별처럼.
단지 내가 밤낮의 차이를 몰랐고, 상황의 결과만 알았을 뿐이었다. 하늘은 그대로인데, 사람인 나는 같은 시간, 같은 하늘의 기억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자리가 그 사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