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와 대화를 하고 나면 정체불명의 찜찜함이 남는다. 분명 이야기를 할 때는 즐거운 분위기였는데, 전화를 끊고 나면 미묘한 불쾌함이 감돌았다.
분명 즐거운 주제나 자기 계발서에 나올 법한 희망적인 주제를 이야기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한 시간가량의 대화를 나눈 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Q는 기본적으로 선입관이 강했고, 말하는 중간중간에 '들었던 이미지와는 달리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과 '회사에서 선호하는 일 시키기 좋은(?) 골드미스'라는 표현과 '그냥 애인(?)이나 두면서 살면 되지 않냐'는 본인의 돌직구 소신 발언이 대화 중간중간 나왔다.
가정을 자랑하고, 아이 이야기를 좋아했던 Q. 그런 Q는 타인에게는 막말이 자주 섞였다. 불쾌했다. 하지만 Q가 성격이 급한 나머지 과격한 표현을 하는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렇게 넘기고 또 넘겼다. 가까워졌음에도 무심코 나오는 Q의 언어,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서도 Q의 언어는 심각함이 있었다.
나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책을 읽어도 어렵다. 객관화는커녕 '감정의 늪'에 빠지기 일쑤였다. 한 번은 Q가 내 나이를(?) 칭찬했다. 마흔이 넘어서 책임감도 강하고 일 잘하는 나이, 회사가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건 정말 아부의 끝이었고, 나와도 끝나는 이야기였다.
분명 어떻게 해서든 나이 많은 나를 칭찬해 주려는 그 마음은 가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아무리 세상 소식이 늦은 사람이지만 블라인드에 오를 정도로 시끄러운 이야기가...'나이 이슈'였다. 그만큼 30대를 넘어서면 회사에서는 어렵고도 또 어려운 위치였다.
나도 객관화가 안되는데 주변에 Q와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얼마나 세상 물정에 어두워질까? 어렸을 때 배운 '혹세무민'이라는 한자어처럼 Q는 나의 눈을 가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Q가 현실을 정반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Q는 왜 나와 가까워지려고 할까? Q와 매일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퇴사한 사람의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다른 건 기억나지 않아도, 퇴사 후에는 정말 보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있었서 좋다는 그 말이 좋았다. 나 역시 직장생활의 끝은 보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호사를 누릴 것이라는 것.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많은 문들을 통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또 그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