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중독되었습니다.

by 그럼에도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전자책 14%) 멀티태스킹의 함정


일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문자를 자주 확인한다면

문자를 쳐다보는 찰나의 시간뿐만 아니라 이후 집중력을 되찾는 데

들어가는 시간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며, 이 시간은 훨씬 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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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스크린타임 기능이 하루 핸드폰 사용 시간이 네 시간이라 알려준다면, 사실 우리는 집중력을 상실함으로써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심각한 중독의 늪에 빠져 있다.


코로나시기가 오기 전부터 유튜브를 보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무제한 용량이라고는 하지만 데이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코로나시기가 오고, 낯선 동네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상을 보는 시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은 그 수위가 심각해서 영상으로 보느라 잠을 줄였고, 아침에는 알람음을 듣지 못하거나 몇 번이나 다시 누웠다가 간신히 일어나서는 커피 몇 잔을 생명수처럼 마시면서 시작한다.


커피가 사라진 일상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못 마시던 쓰디쓴 아메리카노 세네잔을 마시면서 월급쟁이 일상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가끔씩 입술 포진을 상장처럼 받아서, 누구나 나의 피곤함을 알 수 있도록 홍보한다. 나는 무엇을 열심히 하느라 이렇게 피곤이 입에 걸린걸까?


오늘은 날이 좋았고, 공원 산책을 하다가도 잠깐 발길을 세우고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이미 보았던 푸바오의 귀여운 영상이었다. 더 궁금한 내용도 아니었고, 옆에 있는 반려견보다 더 사랑스러웠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폰을 뒤적이는 습관에 불과했다.


전처럼 책 몇 장을 읽기 힘든 건, 저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자인 내가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나의 집중력 한계점이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던 피아노 건반. 그 건반 앞에 앉아서도 10분이 지나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특별한 연락이 오지도 않고, 비즈니스 상 중요한 업무가 있는 사람도 아닌데, 폰을 열었다. 광고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저 내가 심각한 중독 상태였다.


지금 나는 폰 중독, 더하여 카페인 중독으로 현재, 중증 환자였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집어든 이유는 나의 집중력 부족의 원인을 찾기 위한 첫 단계였다. 책을 몇 장 읽다 보니 내가 쓴 글이 아닐까 싶은 문장들이 보였다.


회의 중에도 수시로 폰을 보거나, 다른 파일을 찾아보았다. 운전 중에도 신호 대기 중에 카톡 메시지를 확인했다.(나름 멀티태스킹 줄인다고 운전 중에 음악 듣기도 멀리하고 있는 와중에)


집에서 여유롭게 혼자 있을 때에도, 급박한 과제나 업무로 집중력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책 읽는 시간을 늘리겠다고 TV를 치웠는데, TV에 있는 내용은 폰으로 확인하고 있었으니 그저 새로운 대체품이 생겼고, 전보다 더한 괴물이 옆에 있었다.


어렸을 때,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다. 지금 나의 바보상자는 폰일까? 아니면 이렇게 중독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일까?


정작 중요한 일은 놓치고, 어쩌다 12월이 되었다. 집 나간 집중력과 헛헛한 마음이 연말을 맞이한다. 올해 몇 개의 피곤한 사건들로 마음을 졸였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마음의 아픔을 잠시 달래려고 했었다.


잠깐은 효과적이었던 진통제였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게 되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재밌는 영상이 클릭을 유도했다. 진통제가 더 큰 병을 일으켰다.


잠시가 몇 시간이 되고, 생활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짧은 숏폼을 보았다. 그것도 전에 보았던 영상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도, 한 컵 분량의 물이 필요했는데. 유튜브는 나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엄청난 정보를 쉬지 않고 흘려보내고 있다. 나는 물속에서 허덕이면서도, 나올 생각은커녕 어떻게 하면 물 위에서 서핑하면서 자유자재로 움직 일지를 고민한다.


애당초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눈 밑에는 다크서클을, 입술 옆에는 입술포진으로 피곤함을 뚝뚝 흘리고 있다.


12월의 시작은 4년간의 영상 중독을 회개하면서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짧은 집중력과 주위 산만함의 원인은 내 손이 만들었고, 두뇌에는 병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요새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환자를 관찰하는 의사처럼,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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