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다면?
김훈작가님의 글을 필사한다면 글이 좋아진다는 조언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미루고 미루던 글 처방전을 얼마 전에서야 시작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제가 몸에 들어가고, 평소보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빨리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필사의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예전에도 나는 필사를 시작하고 며칠이 안 돼서 그만둔 전력이 있다. 나라는 사람은 꾸준함이 없었고, 시작은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자신감이 없었다.
이번에는 동네 화방에서 붓펜을 사서 천천히 필사를 시작했다. 볼펜과 달리 붓펜으로 적는 글씨는 느리고 느려서 아날로그의 정점을 느낄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느낌을 느끼다 보면 마음속 부글부글한 감정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된다.
글이 나중이고, 마음이 우선이라서 시작한 붓펜을 이용한 필사였다.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가게를 운영했다. 자영업자가 그렇듯 365일을 일하고 근면 성실함을 기본으로 살아가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성실함이라는 유전자가 전달되지 않았다.
하루를 게으르게 시작하다가 저녁이 되면 한숨이 나왔다. 그런 마음이 쌓여서 우울함이 묻어 나왔다. 활동적인 취미가 없었기에 시작한 취미였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라도 빠져나갈 자리가 필요했다.
붓펜으로 천천히 쓰는 글씨는 저자의 글을 천천히 읊조리게 되는 기회가 된다. 평소처럼 휘리릭 읽어내리지 않고 눈으로 한 번 읽고, 손으로 한 번 쓰는 지루하고 단순한 동작은 의외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글을 위해서 권유했던 필사, 나는 좋은 마음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권유한다. 성급한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
잠시라도 쉬어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