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미엄마, 그리고 아줌마로 살아가는 것
H와 나는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식당이 있었다. 여의도 IFC몰 지하의 그 식당은 점심시간이면 길게 늘어진 줄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분위기가 좋은 편도 아니고,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닌, 그저 여기저기 있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가끔 그곳의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사실 나는 그 국숫집보다 부암동 만두집이나, 명동교자를 더 좋아했다. 짭짤한 국물과 먹고 나서 대화할 수 없는 마늘향 가득한 김치, 심심한 만두를 사랑했다. 하지만 미드미를 데리고 그곳들을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H는 여의도 국숫집 말고는 그다지 국수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던 터였다.
주말의 느지막한 점심. H와 나는 오랜만에 여의도 국숫집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줄이 길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H를 두고 먼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띠 안에서 미드미는 곤히 잠들어 있었고, 식당에 들어가면 편히 눕힐 유모차를 두 손에 든 채, 정말이지 오랜만의 외식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때 얼핏, 뒷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저거봐, 진짜 끝이라니까. 어후 너무 힘들 거 같아"
"그러게. 그 언니도 그랬잖아. 백화점 가도 자기 옷 살 돈으로 아기 꺼 산다고"
"애는 진짜 아닌 거 같아. 너무 힘들어"
"응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들려버린 대화에 마음 한편이 시렸다. 깜깜한 핸드폰 액정에 내 모습을 비춰보며 많이 초라한가를 생각했다. 청바지 말고 원피스를 입고 나올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곧 점심을 먹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괜히 한번 쓱 발랐다.
사실 대화 내용 중에는 맞는 부분도 있었다. 백화점을 가면 내 옷 살 돈으로 아기 것을 사는 건 좀 맞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슬픈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실 난 입을 옷이 있고, 미드미는 없는 상태니까. 그리고 지금은 나보다 미드미가 예쁜 옷을 입는 게 더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너무 힘든 것도 맞았다. 하루 세 번 이유식과 네 번의 수유, 여기를 정리하면 저기가 널브러져 있고, 저기를 정리하면 여기서 놀고 있는 그녀는 슈퍼파워에너지를 지닌 초강력 울트라 베이비였고 나는 저물어가는 아날로그식 배터리를 지닌 삼십 대 아줌마에 불과했기에.
하지만 진짜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부분도 많지만 행복한 부분도 많고, 적어도 나는 미드미 덕분에 다시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부분이 있었다. 냉정한 스타일인 H는 미드미를 볼 때면 어울리지 않게 종종 이런 말도 했다. '아, 미드미가 있으니 너무 힘든데 너무 좋아. 사는 맛이 나'... 무엇보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선택할 기회가 와도 미드미를 선택할 거니까.
부스스한 머리, 두꺼운 아기띠, 아직 덜 빠진 붓기(라고 쓰지만 사실은 살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짐으로 빼곡한 가방, 낮은 신발, 분주해 보이는 일상... 누군가가 보면 안쓰럽고 버거워 보이는 나겠지만, 나 스스로는 나름대로 육아라는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는 걸,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것 같다. 직장에 있을 때 '미생'을 보면서 그렇게 공감하고 울었는데, 지금도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티션 대신 베이비룸이, 사원증 대신 아기띠가, 출장 대신 문화센터로의 작은(?) 변경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오늘은 김전무(는 H와 내가 미드미를 부르는 애칭이다)가 고맙게도 9시에 출근했다. 김전무가 늦잠을 자준 덕에 상쾌한 하루를 맞았지만 두 번의 이유식을 반려하는 바람에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끝까지 독려하여 결재를 받아냈다. 중간에 한번 취침으로 인한 외출을 해 준 덕에 잠시나마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대신 만땅으로 충전된 체력으로 인해 내리 다섯 시간을 파이팅 넘치게 업무에 복귀하여 열심히 놀아줘야 했다. 매주 수요일은 가정의 날이라는 걸 알았는지 8시에 취침으로 인한 퇴근을 함으로 하루 일과가 마감되었다.
오늘의 김전무 패턴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