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에 추진력을 주는 동기
사람이 철이 들려면 결정적 계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들리다가, 갑자기 자신의 내면에 소용돌이가 치면서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다. 인간의 고집은 대단해서 타인에 의한 게 아닌 자기 자신에 의한 선택으로 살아갈 때 추진력을 얻는다. 부모님 눈밖에 나기 싫어서 공부를 하고 있거나, 연봉이 높다는 소문만 듣고 취업 시험을 준비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위해 공무원 시험을 치르겠다고 앉아 있으면 대체로 시들시들한 공부가 되기 쉽다. 활활 불타오르는 공부가 아닌, 언제 꺼질지 모르는 양초 위의 여린 불꽃처럼 말이다.
나에게도 공부의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내가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게 9살부터니까 18살에 그 운명적인 모의고사를 치르기 전까지 아주 오랜 기간 지지부진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공부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올백 맞고 전교 1등 해서 엄마도 기쁘게 하고, 내 어려운 현실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친구랑 떡볶이랑 김말이도 먹어야 하고, 만화책방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 엄마가 외출한 틈을 타서 몰래 텔레비전도 봐야 하고, 문제집만 풀려고 하면 책이 너무 재미있어 읽다 보면 잠잘 시간이 되고, 자기 전에는 라디오 이문세의 별밤도 들어야 하니까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드높은 이상과 달리 공부는 하기 싫었던 게 맞다.
매일 계획표를 세우고, 계획대로 하지 않은 나를 미워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한 달 전부터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다가 결국 시험 전 날 벼락치기로 암기를 했다. 운이 좋으면 상위권, 운이 나쁘면 중위권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또 펑펑 울었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나의 이런 의지박약 패턴은 무한반복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쟁쟁한 친구들과 공부를 하게 되었다. 배치고사 결과를 보니 반에서 30등이었다. 충격이었다. 아무리 벼락치기로 했어도 중학교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충격을 받고도 나의 공부 패턴에는 변화가 없었다. 의욕만 앞서고 공부는 부실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의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전체 학생을 성적순인 A, B, C 반으로 나누어서 자율학습 공간을 다르게 썼는데, 고3 1년 동안의 자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난이도에 따라 널뛰기가 심했다. 늘 그랬듯이 운이 좋으면 상위권, 나쁘면 중위권이었다. 바로 앞의 모의고사에서는 성적이 좋게 나와서 나는 전교 50등까지 모인 A반에 짐을 두고 공부했었다. 그러나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고 난 뒤, 나는 A반에서 짐을 빼는 두 명 중에 한 명이 되고 말았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내 단짝친구 숙이도 함께 서 있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이번에 모의고사 결과에 따라서 네가 B반으로 가고, 숙이가 A반으로 가게 됐어.>
나보다 친구가 더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침착했다. 선생님께 알겠다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의젓하게 답하고 친구에게는 축하한다며 나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우리 둘 다 열심히 하자면서 말이다. 나는 A반에서 짐을 챙겼다. 친구들이 힐끗 보면서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옆에 앉은 현이만 나에게 아쉽다는 뜻을 전했지만, 18살의 나는 그 순간의 모든 장면이 모욕으로 다가왔다.
그 시험 결과가, 친구와 뒤바뀐 자리가, 나를 안쓰럽게 보던 친구들의 눈동자가, 나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지난 공부가 투정에 불과하며 회피라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속이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나는 울지 않고 그날부터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공부가 힘들거나 싫지 않았다. 오로지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투지에 가득 차 있었다.
B반에서 겨울 방학을 보냈다. 예비 고3이라 방학에도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나와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했다. 마음은 독하게 먹었지만, 나의 공부는 침착하고 깊숙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고3 첫 중간고사에서 나는 문과 여자 전교 3등이 되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점수였다. 그러고 나서 알았다.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지독한 수치심이 나를 바꿔 놨다는 것을.
자신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사람은 공부를 통해 성장한다. 공부에 몰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