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라는 도박

by 난화

결혼은 한 인간에게 자기 인생을 배팅하는 도박과 같다.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머리를 굴려도, 결국 불확실한 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보통 결혼을 결정하는 연인들은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한 사람과 영원을 맹세하는 계약을 어떻게 맺을 수 있겠는가. 이미 상대에게 잔뜩 홀려 판단력을 잃었거나, 다른 사람을 또 만날 자신이 없거나, 마침 결혼 적령기이거나,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탈출을 꿈꾸거나, 남들도 다 한다니까 결혼을 선택한다. 이런저런 이유는 달라도, 결혼에 대한 기대는 동일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 보다는 낫겠지 싶은 마음 말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결혼식장에 무사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징어게임에 출사표를 던진 플레이어처럼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한다.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미션을 통과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자칫 잘못하면 결혼 자체가 무효화되는 지경에 이른다. 상견례와 식장 예약을 비롯해 1부터 100까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인데, 여기에는 전부 비용이 발생한다. 눈치 게임의 시작이다. 양쪽의 욕망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경제력이 다르고, 집안 어른들의 의견이 다르다. 자잘한 모든 단계마다 스파크가 일어나고, 연인들은 지친다. 결혼식 당일까지 식대 계산 문제로 얼굴을 붉히게 되리라는 걸 프러포즈받는 날에는 전혀 몰랐을 터였다.


결혼은 현실이고 연애의 무덤이라는 기혼자들의 말을 당당하게 흘려듣는다. 우리는 다를 거라는 확신으로 뛰어든 결혼 생활이 당혹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상대의 패를 모조리 읽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게 완전한 속임수였음을 곧 알게 된다. 상대가 일부러 속인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자기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던 것이다. 5년, 10년을 만나 연애할 때는 전혀 몰랐던 추악한(?) 면모가 동거 생활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무 데나 옷을 뒤집어 벗어 놓고, 잘 씻지도 않고, 새벽까지 엎드려 게임하고, 통장 잔고에 관심도 없고, 아직도 지네 엄마 아들 노릇만 하려 들고....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였는데, 결혼 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벽이다.


둘이 깨를 볶고 살아 보려 해도 결혼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신랑이 착하면 시모가 무섭고, 시모가 너그러우면 시누가 속을 뒤집고,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데 전세 사기의 주인공이 되고, 수년을 기다려도 아이가 생기지 않고, 실직 후에 일을 구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 사람이 망가져가고, 덜컥 암에 걸려 무서운 시간을 견뎌야 하고,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우울과 공황장애로 무너지기도 하고... 이 모든 격랑의 파도에 부부는 한 덩이가 되어 휩쓸린다. 한쪽이 무너지는데 다른 한쪽이 태연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하더라도, 상대방이 휘청거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기대하던 사람이었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부를 다 거는 올인을 선택했다. 얼마나 위험한 배팅인지 모르고 말이다. '사랑'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천진난만한 이상이 결혼이라는 문에 들어서게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은 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숱한 변수들을 통과하느라 지쳐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잭팟이 터질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용한 과정이 아니라, 삶 곳곳에 숨어 있는 꼬깃꼬깃 접힌 보물찾기 쪽지를 찾아내는 일과 비슷하다. 억만금의 행복이 오지 않더라도, 함께라서 다행인 작은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의 배팅은 나름 성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