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아파트 사람들 ②

피는 물보다 진하고, 복도는 밥 냄새보다 뜨겁다

by Rani Ko

수찬이네를 지나 복도 초입인 5호에는 나정이네가 살았다. 나정이는 오빠와 터울이 큰 막내딸이었는데, 한 살 위인 나를 ‘라니 언니’라 부르며 유독 따랐다. 하지만 나정이는 소문난 깍쟁이였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내 여동생은 시시해서 끼워주기 싫다며 대놓고 눈치를 주곤 했다.



동생이 복도에서 나만 찾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정이네 방 가득 펼쳐진 반짝이는 종이 인형들의 유혹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복도 너머로 “언니야!” 하고 나를 찾는 동생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릴 때면, 나정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쉿!” 하며 숨을 죽였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했던 걸까. 언니는 결국 언니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화려한 종이 인형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혼자 울고 있던 동생의 손을 잡았다.



동생에게 내가 우상이었듯, 나에게도 우상이 있었다. 9호에 살던 은정 언니였다. 공부도 잘하고 야무졌던 언니는 본인의 장난꾸러기 남동생보다 이웃집 여동생인 나를 더 예뻐해 주었다. 언니네 어머니는 요즘의 대치동 엄마들 못지않게 교육열이 대단하셨는데, 가끔 언니가 입던 백화점표 값비싼 옷이나 전집들을 챙겨 우리 집으로 건네주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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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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