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옆에는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리사’가 있다.
**스포일러 포함
<톰보이>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남자애처럼 행동하는 여자애’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주인공 로레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폭력의 작동 방식을 빨강·파랑의 강렬한 색으로 나눠 노골적으로 묘사했는데, 국내개봉 당시 이 영화를 두고 트렌스젠더 서사 또는 여성 서사, 무엇이라고 봐야 할지 논의가 활발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반한다. 그러나 영화를 둘 중 어떤 것으로 읽더라도, 주인공인 로레가 분명한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한다. 로레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어있음에도 그 피해 사실이 부각되지 않은 이가 있는데, 그건 리사다. 영화는 로레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낸 반면, 리사를 향한 폭력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실제 사회에서 작용하는 폭력의 매커니즘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폭력은 일차원적 방식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넘어, 심리적 압박이나 배제, 편견이나 일반화 등 은밀한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다른 방식의 폭력에 노출된 로레와 리사, 두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카엘'은 로레가 선택한 정체성이자,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저항하는 수단이다. 로레는 미카엘이 되어 웃통을 벗고 축구를 하거나, 직접 수영복을 잘라 만들고 그 안에 찰흙을 뭉쳐 남성기를 흉내 내며 자신만의 저항의식을 치른다.
반면 리사는 어떤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쉽게 집단 내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한다. 대표적으로는 ‘애들이 여자라서 끼워주지 않는’ 축구 경기 등에서다. 아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 대부분에서는 리사가 무리의 끝에 자리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집단 내 리사의 위치를 드러낸다. 다시 말하면, 주류 집단에 속한 것으로 보이는 리사도 그 내부에서는 소수자로서 차별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복도에서의 진실게임 장면이나,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그렇다.
일부는 “리사도 로레에게 폭력을 가하는 주체가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후반부 성별을 확인해보자며 아이들이 로레를 둘러싼 장면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로레에 대한 폭력은 정신적인 것에서 신체적인 것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때 표면적으로 리사는 갈등상황에서 가해자로서 역할 하게 된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도 리사가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데 있다. 리사는 아이들을 막아서며 제재에 나서지만 그런 리사를 향해 쏟아지는 건 “여자가 맞다면 넌 여자랑 키스한 거잖아”, “구역질 안 나니?” 등의 날 선 비난이다. 이미 다수가 어떤 행위를 ‘구역질 난다’고 정의했을 때, 개인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특히 개인이 집단 내 소수자일 경우에는 쉽게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사는 가해 행위에 동조하도록 종용 되어 결국 폭력의 도구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리사는 자신이 원치 않은, 가해의 수단이 됨과 동시에 집단 폭력 피해에 노출된다. 감독은 이 장면 사이에 리사를 부추겼던 남자아이가 팔짱을 낀 채 한걸음 떨어져 지켜보는 컷과 로레와 리사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컷을 넣음으로써, 자신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러닝타임 내내 직·간접적으로 묘사되는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이들을 응원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은 두 사람의 연대다. 로레는 자신의 집 근처를 맴도는 리사에게 먼저 다가간다. 그 후 "넌 이름이 뭐야?"라며 먼저 손을 내미는 리사에게, 로레는 빨간색 옷을 입고 "내 이름은 로레야"라고 답한다. 영화는 슬며시 웃는 로레의 모습을 살짝 슬로우로 보여주며 끝나는데, 이는 앞으로도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를 쌓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영화는 이 모든 부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연대와 유대감으로 끝내 '생존'하고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자신의 다른 작품 <워터릴리스>, <걸후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도 그랬듯 <톰보이>에서도 여성 연대, 피해자 연대를 강조한다. 이런 감독의 의도는 삽입된 곡 ‘Always’로 더욱 강하게 와 닿는다. 리사의 방에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장면과 이후 엔딩크레딧에도 같은 곡이 삽입돼, 여성 연대를 거듭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반복되는 ‘널 사랑해, 언제나’라는 가사는 로레와 리사가 영화의 세계 속에서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동시에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관객을 향한 감독의 따뜻한 당부로도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