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면서 예수 믿으라는 할머니

짧막한 안물안궁 이야기

by 랭크작가

요즘 날이 좋아 집 근처 하천 산책로에서 걷고 있을 때였다. 나는 에어팟을 꽂고 설교를 듣고 있었다. 모태신앙이지만 교회에 공동체 안에서 씨앗을 뿌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모바일이나 온라인 예배만 드린다. 그때 한자리 펴고 앉아있던 할머니가,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궁시렁 거리는게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도 뚫고 내 귀로 들어왔다. 하물며 나는 같은 기독교인데도, 그 할머니의 전도 방식이 불편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종교가 없거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겐 얼마나 갑작스러운 불편함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악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믿어보고,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느껴서, 혹여나 지옥에 있을 수 있는 다른 사람도 자신의 방식대로 구원해주고 싶다고 느꼈었을 테이니. 그러면 그런 할머니들에겐 어떤 전략이 부족해서 사람들에게 반감과 불쾌감을 산 것일까. 나는 세 가지로 요약하려고 한다.



1) 주도권 침해(Reactance)

인간은 자기 선택이 외부에서 강제될 때 자동으로 저항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싶고, 하라면 더 하기 싫은 것이다.

2) 관계 형성 없이 메시지부터 강요

관계도 맥락도 없는 사람의 가치 개입에서 이미 끝난 것이다. 상호 간에 신뢰가 0인 상태에서 던진 메시지는 쓰레기값이 된다.

3) 상대 니즈 무시

사람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때 마음이 열린다. 나의 고민과 상관없는 설교는 노이즈일 뿐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서로 간에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악의 없이 정말 내가 경험한 좋은 것들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은 당연히 악의가 없으며, 정보 전달과 지식 전달을 통해 유용함과 가치를 공유하고자 함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전달하는 내용이 타인에게 위의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될 것 같다면, 말을 꺼내는 것보다 내 마음에 두고 지나가는 것이 더 나은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