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막한 안물안궁 이야기
불편한 진실이 있다. 나는 또라이가 될 지언정, 남이 또라이인 것은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 사람 또라이다, 별로다 하는 평가를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동조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분노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은 든다.
또라이의 기준은 참 모호하다. 좋은 사람도 한 순간에 또라이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어느 팀에서 내가 제일 늦게 전입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혼나가며 내가 제일 피해를 주는 입장이라면, 그 사람의 내면이 착하더라도 '일 적으로는' 1명 꼽았을 때 또라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주변에 또라이가 아무도 없으면, 내가 또라이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또라이를 광범위하게 보면, 1000% 또라이도 있을 것이고, 한 10%정도의 또라이도 있을 것이다. 단어는 나쁜 단어지만, 내재된 의미로는 꼭 나쁜 말이 아니라,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정도의 차이로 또라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모두 에이스고 나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라면, 높은 확률로 그 사람들에게 내가 또라이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의 또라이는 개인의 의지로 얼마든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또라이인줄 모르고, 피해를 주는 시간을 지속하고 싶다고 하면 복리의 효과로 점점 더 또라이가 되는 것이고, 일찍 깨닫고 내 몫을 하고 피해주지 않으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면 또라이를 탈출하는 것이다. 또라이 없는 삶에서 살고 싶은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도 승리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