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가계부 쓰기는 다짐뿐

가계부를 매일 미루는 나에게

by 랭크작가

가계부를 또 미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째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바로 나를 책망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게으르냐고, 왜 이것 하나도 꾸준히 못 하냐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 자기 관리 못 하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내가 가계부를 미루는 이유는 돈을 대충 쓰고 싶어서도,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지금 내 앞에는 가계부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 마음을 추스르는 일, 관계를 버텨내는 일, 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넘기는 일. 그 일들이 이미 나의 에너지를 대부분 써버리고 있다.


그래서 가계부는 미뤄진다. 그건 나태의 증거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모든 걸 동시에 잘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다 때가 되면 한다. 내가 조금 숨을 돌리고, 지금의 문제들이 정리되고, 다시 여유가 생기면 가계부는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질 것이다. 억지로 끌고 가는 성실함은 오래가지 않지만, 회복 이후에 돌아오는 질서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그래서 오늘은 자책하지 않기로 한다. 가계부를 안 쓴 하루가 나를 망치는 게 아니라, 나를 계속 몰아붙이는 태도가 나를 망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늘 앞에 있는 일만 해낸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전 12화다면평가 만점 VS 7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