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가 이렇게 괴로운 이유는 움직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문명과 움직여야 정상인 몸, 이 두 개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움직임이 포함된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걷고 나르고 이동하는 행위 자체가 생존이었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는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모됐다. 먹는 행위와 움직이는 행위가 하나의 구조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체중을 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전환점은 이동이 ‘노동’에서 ‘좌석’으로 바뀐 순간이다.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인간은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하게 되었지만 몸은 거의 개입하지 않게 됐다. 하루 중 가장 큰 에너지 소모 구간이 사라진 것이다.
문제는 이 변화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계단을 대신했고, 배달과 자동화는 일상에서 움직일 이유 자체를 제거했다. 이제는 움직이지 않아도 아무 불편이 없는 환경이 완성됐다. 편리는 쌓였고, 그만큼 신체 활동은 일상에서 빠져나갔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유독 의지, 관리, 실패, 자책의 언어로 설명된다.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개인의 나약함이라기보다, 움직여야 정상인 몸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충돌한 결과에 가깝다. 편리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편리가 인간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대체해버린 순간이다. 걷기 쉽게 만드는 편리가 아니라, 걷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편리에서부터 역효과는 시작됐다.
그래서 해답은 운동을 더 하자는 말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운동을 얹어야 겨우 균형이 맞는 삶 자체가 이미 비정상일 수 있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조금씩 되돌리고, 인간이 원래 갖고 있던 기본 움직임을 일상으로 복원하는 쪽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