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지 않아도 상상하게 되는 삶들

by 랭크작가

요즘 너무 많은 삶에 노출되어서 그 삶들을 보게된다. 예전에는 주변 몇 사람의 인생만 알았다. 가족, 친구, 회사 동료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도 브런치 글이든, 유튜브 숏츠든 수십 개의 인생이 눈앞을 지나간다. 해고 후 인생이 바뀐 사람, 재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 평범한 회사원이 글을 써서 작가가 된 이야기, 갑자기 유튜브로 성공한 사람, 무명에서 아이돌이 된 사람까지.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이런 삶도 있다”고 보여준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단순히 구경으로 끝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아주 짧게라도 상상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혹시 지금 내 선택이 미래를 바꾸는 갈림길 아닐까?’


예전에는 상상하지 않아도 됐던 가능성들이 이제는 강제로 머릿속에 들어온다. 원하지 않아도 비교가 시작되고, 원하지 않아도 다른 인생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삶은 그렇게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비슷한 리듬 속에서 살아간다. 출근하고, 밥을 먹고, 가족을 돌보고, 내일을 준비한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평범함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변화, 반전, 성공, 실패처럼 감정의 진폭이 큰 이야기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세상은 실제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는 점점 현재의 삶에 집중하기보다 ‘가능한 다른 삶들’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 회사에 앉아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다른 인생이 재생된다. 어느 날 갑자기 퇴사하는 나, 글이 대박 나는 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나. 그렇게 수십 개의 가상의 삶을 동시에 살아보느라, 정작 지금의 삶에는 완전히 머물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자유로워지기보다 불안해진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삶이 계속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기 때문에 후회도 적었다. 지금은 알기 때문에 흔들린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 같고, 지금 이 길이 틀린 것 같고, 어딘가 더 특별한 인생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삶들은 ‘가능성’이 아니라 ‘콘텐츠’에 가깝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삶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보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확률적으로 드문 이야기일수록 더 자주 보여준다. 우리가 계속 상상하게 만들수록 화면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너무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상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삶은 원래 그렇게 많은 갈림길 위에 놓여 있지 않았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어나지 않은 미래까지 미리 살아보느라 지쳐버린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가능성을 아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잠시 끄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삶을 상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모든 변화가 나에게도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그래야 비로소 지금의 삶이 다시 현실의 크기로 돌아온다.


우리는 생각보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오래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생은 극적인 전환점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화면 속 수많은 삶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놓인 하루가 실제로 내가 살아야 할 유일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요즘 시대에 가장 어려운 집중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명품이 아니라 ‘정품이라는 이야기’를 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