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바로 옆에서 어떤 사람이 몇 초마다 크게 기침을 했다.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거의 5초에 한 번씩 계속 기침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마스크도 쓰지 않고 너무 태연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런닝머신만 모아둔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숨을 거칠게 쉬는 걸 생각하면 솔직히 너무 불쾌했고 혹시라도 옮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집중도 안 되고 짜증도 났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괜히 위험하거나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마스크 좀 쓰세요.” 정도는 말했을 것 같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행동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도의 말은 서로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교정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다.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또라이 같은 사람들, 소위 말하는 빌런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빠르게 퍼지고 너무 자주 등장한다.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있고,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더 큰 갈등을 겪는 사례도 계속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조심하게 된다. 괜히 말 걸었다가 더 이상한 반응을 보이면 어떡하지, 혹시 저 사람이 위험한 사람은 아닐까, 그냥 내가 피하는 게 낫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불편해도 참고 넘어가고, 이상해도 쉬쉬하고, 결국 내가 자리를 옮기거나 피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정리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는 태도가 일종의 사회적 생존 전략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구조가 오히려 더 이상한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런 빌런 같은 사람은 100명 중 1명일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99명은 속으로 다 불편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99명이 모두 조용히 있기 때문에 그 1명은 계속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그중 한 명이 “마스크 좀 쓰세요.”라고 말했을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맞아요.” “좀 불편하네요.” 정도만 거들어도 상황은 금방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뻔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첫 번째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사회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더 예민해져서 세상이 불편해진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점점 말을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서 이런 일이 더 많아진 걸까. 예전에는 작은 무례나 민폐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면서 서로를 교정하는 문화가 어느 정도 있었다. “줄 좀 서세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같은 말들이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일부처럼 작동했다. 그런데 지금은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공공장소에서도 누군가 민폐를 부려도 그냥 참거나 피하는 것이 기본 반응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조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참고 넘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무례한 사람은 계속 편하게 행동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만 각자 조용히 감당하게 된다. 헬스장에서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옮겼다. 아마 나 말고도 불편했던 사람이 몇 명은 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조용했다. 어쩌면 요즘 사회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빌런이 아니라, 빌런을 그냥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