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의 '노력'과 김부장아들의 '노오력'의 차이

40대 김부장의 ‘노력’과 10대 김부장 아들의 ‘노오력’의 차이

‘노력(努力)’은 ‘목적을 위해 힘을 다해 애씀’이라는 뜻을 지닌다. 무언가 삶의 중요한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애쓰고 힘써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 이면에는 현재라는 시간을 다소 유보, 지연시키고 그 눈을 미래를 향해 돌려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 지상주의는 ‘노력의 깊이가 곧 성공과 비례’한다는 명제와 함께 사회적 호응을 얻었다. 1993년 출간되어 공존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7막 7장>에는 그러한 노력의 최대치를 몸소 체험한 생생한 저자의 경험담이 적혀있었다. “인간은 정지할 수 없으며 정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생태로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인간이며, 현상태로 있을 때 그는 가치가 없다.”라는 장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하며 그 책은 시작된다. 책의 부제목인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처럼 당시 하버드대에 입학한 저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녹아있었다.


“삶을 살아감에 퇴색하지 않는 진한 꿈들을 우리는 하나씩 지니고 있다. 어떤 역경과 장애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멈추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젊은 영혼을 지켜주는 진보적 힘의 원천은 바로 그와 같은 포부이다. 그러하기에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엠마 골드만도 말하지 않았던가? 특히 나처럼 저돌적인 성격의 몽상가에게는 더욱 절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90년대 대학생이었던 김부장은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위 책의 구절구절에 큰 감동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김부장 역시 힘든 시절과 고비마다 노력으로 버텨왔다. 깡시골에서 태어나 10리 길을 걸어다니며 초등학교를 마쳤고, 서울에는 돈벌기 위해 올라왔다가 작은 원룸을 전전하며 공장에서 일하다 야간대학에 운좋게 다니게 된 그였으니 말이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였고, 이는 홍정욱의 하버드대를 향한 열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꿈’이라는 단어는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어느덧 중소기업의 부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 그에게 걱정이 하나 있다. 김부장의 아들에게 자신의 10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다. 특히 ‘노력’과 ‘열정’을 강조할라치면 더욱 큰 거부반응을 보인다. 노력만을 내세우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오력’에 담긴 부정적인 의미를 토로한다.



외환위기의 돌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그로부터 약 몇 년이 지난 후 ‘노오력’이라는 명사가 유행처럼 번졌다. ‘노오력’은 ‘노력’을 강조하는 뜻인 동시에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말로, 사회가 혼란하니 노력 가지고는 되지도 않는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사실상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닥친 조건들이 ‘노오력’만으로 극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라는 당시 신문 기사문은 ‘노오력’의 본질적 의미와 그 단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노력충’(努力蟲), 의지드립, 만물노력설 등은 모두 ‘(안되는 혹은 실패한) 모든 일을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꼰대(?!)를 비판하기 위해 합성된’ 단어들이다. 그러던 중 점차 “개인의 성취와 성공, 혹은 실패”등을 분석하는데 사회적 문제는 간과한 채 개인의 문제로만 귀결하여 단정짓는 이들을 향한 단어로 그 의미가 강화된 것이다.


“물론 어떤 일을 해내는 데 노력이 필요함은 사실이나, 무한 경쟁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한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 드립(=만물노력설)을 쓰는 사람들은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바꾼다.”는 식으로 노력의 중요성만 주장하면서 그 외의 사람들을 “정신력이 부족하다, 의지박약이다, 노력하면 다 된다.” 등의 말로써 매도한다. 또한 그렇게 남에게 노력을 강조 혹은 강요하면서 정작 노력충 본인은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 내로남불 경향이 있다.(중략)
이와 같은 분위기가 강해진 것은 청년실업의 급증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갑질과 열정페이, 착취, 채용 비리 문제, 대기업 중심 경제 구도 및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 대한민국 경제가 외면한 적폐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노력충’: 나무위키)


김부장의 아들은 자신이 ‘노오력’ 세대라고 말한다. 어차피 계급은 정해져 있고 개인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 수직상승을 한다고 해도 자신은 결국 금수저 아래 흙수저일 뿐이지 않을까, 하여 고민이 많다. 노력에 뒤따르는 부정적인 시선들 – 믿을 수 없음, 보람 없음 등 –과 더 나아가 노력 역시 ‘자기 의지’로 본다면 이조차도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학적 사건들의 결과’이고 ‘유전자가 전사되고 신경전달물질이 수용체에 결합되어 근섬유들에 연결되는 과정’을 거치는, 유전적 작용이라고. 인간 심리가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면 그 무의식의 저변은 당대 사회적 현실, 인간관계 등 외부환경과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결국 한 개인의 노력과 선택 등을 규정하는 제반의 요소들은 자기 의지와는 무관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과거 유의미했던 덕목이 현재에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쓸모없는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그 중에는 김부장이 강조했던 ‘노력’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지금의 10대들뿐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절에도 ‘무던히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은 존재해왔고 또 존재한다. 인간의 탄생에서조차 모두 불평등한 다른 조건들이 주어진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노력의 강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노력’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는 <그릿(grit)>에서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함을 입증하였다.


이는 단순히 열정과 근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함과 낙담하지 않고 매달리는 끈기 등을 포함한다. 그 핵심에는 ‘노력의 힘’이 있었다.


즉, 평범한 지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열정과 끈기로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력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지혜로운 노력’을 실행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노력’의 ‘양적 가치’가 아닌 ‘노력’의 ‘질적 가치’와 ‘방향성’에 보다 주목해보면 어떨까.




김부장이 10대 때는 ‘노력’의 ‘양적 가치’가 중요했다. 누가 더 많이, 더 오래 노력하느냐에 따라 대부분의 경우 차별화된 삶이 주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김부장 아들에게는 ‘질적 가치’와 ‘방향성’에 초점을 둔 ‘지혜롭고 현명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자신이 어떤 체력, 정신력, 심력 등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부분에 어느 만큼의 노력을 들였을 때 얼만큼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인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금해야 할 첫째는 ‘타인과의 비교’이며 반드시 해야 할 첫째는 ‘나 그대로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노오력’은 오히려 무겁지 않고 가볍다.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이고 순응적인 덕목이다. 그리고 최종 목표 지점은 반드시 ‘나’를 향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언명인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처럼 '더욱 풍성해질 나'를 기대하며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김부장의 ‘노력’과 김부장 아들의 ‘노오력’은 각기 다른 무게감과 가치로 존중받아 마땅한 시대의 필요 덕목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아빠의 골방 속 비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