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자살금지

'자살'은 금지입니다.

청년은 음독, 공부못한 한탄, 강화에서 자살사건

젊은 청춘의 몸으로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는 것을 비관하고 양잿물을 먹고 고민하는 사람과 부채 늘고 먹을 것 없어 노농이 목매여 죽은 사실이 강화도에 생겼다.

강화군 부내면 신문리 김청일이란 금년 19세 청년은 일찍이 경성 모 중학교를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중도에 퇴학한 후 늘 학업의 길에 다시 오르기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가정이 빈한하야 자기의 희망을 달성할 수 없음을 비관하던 중 지난 22일에도 가정불화로 그의 어머니와 말타툼 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음인지 유서 몇 장을 남기고 다량의 양잿물을 먹고 고민하는 것을 집안 사람이 발견하고 응급치료를 하였으나 효력이 없다하며(<동아일보>, 1931.4.26.)


묘령의 처녀가 투신미수

한강철교에 또 꽃같은 처녀의 자살미수가 있었다. 시내 합동 168번지 김수만의 집에 있는 김동오(19)라는 처녀는 작이일 상오 2시 경에 인적이 끊긴 한강철교 위에서 배회하는 것을 경관이 발견하여 즉시 용산서에 데려다가 보호를 하는 중인데, 그는 본시 원산 출생으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몸부림칠 곳이 없어서 경향으로 떠돌아다니며 어린 목숨을 부지하여 오던 중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는 자각을 갖게 된 그는 많은 고초를 겪어가면서 시내 모 여학교에 학적을 두고 낮에는 학교에를 가고 밤에는 약을 팔아 겨우 그날그날의 쓰린 생애를 이어왔으나 도저히 힘에 부치어 더 계속할 가망이 없으므로 마침내 자살을 뜻한 것이라더라.(<동아일보>. 1923.7.3.)


위의 글은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을 싣고 있습니다. 학업을 더 할 수 없음에 대한 비관과 자신의 신세가 힘듦을 탓하며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입니다. 약 90여 년 전 기사문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시대의 마음 아픈 청소년들을 보는 듯, 쓰리고 아픈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때만 그랬을까요? ‘자살’이란 키워드는 매 시대마다 각기 다른 듯, 한편으로는 또 같은 이유를 지닌 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어왔습니다.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에서도 ‘자살’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어서 ‘자살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통계와 수치를 데이터화하여 분석하기도 하였습니다.



<봄에는 자살금지>

봄에는 자살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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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알레한드로 카소나|역자 김재선|지만지드라마 |2019.09.25


특이한 제목의 이 책은 20세기 스페인이 사랑한 작가 알레한드로 카소나의 작품입니다. 제목에서도 언급되듯이, 죽음을 소재로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한 책입니다. 인간에겐 자기 인생에 대한 권리가 있지만, 의무 또한 있음을 강조하며 죽음이 아닌 삶이 본능, 자연에 순응하는 일임을 역설합니다.

1937년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봄에는 자살 금지>에서 스페인의 극작가 카소나는 ‘자살자의 집’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삶의 다양한 굴곡 앞에서 생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아름다운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물질적인 세상이 싫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아름답게 죽고 싶어 하는 슬픈 귀부인, 은행 말단 직원이면서 오페라 여가수와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다 자신의 초라함을 깨닫고 좌절한 청년 상상 연인, 배고프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다 죽음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맞이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불행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으로 이 기관을 찾은 알리시아,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빠져 형을 증오하면서 자기가 죽지 않으면 형을 죽일 것 같다는 후안, 전쟁으로 부인과 자식들을 잃고 절망하다 이곳을 찾은 안스, 인기가 떨어지자 스캔들을 만들려고 찾아온 오페라 가수 코라….


얼핏 보기에 ‘자살자의 집’은 자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장소를 준비해 놓고 자살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자살하도록 돕는 기관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살 시도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접해 보게 할 뿐입니다. 죽음은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자살자의 집'에 온 손님들은 하루하루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 음악과 묵상, 산책 등을 통해 자살 충동을 치유합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욕구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자살’을 결심했던 사람들이 ‘살자’로 다짐하며 살아가기 위한 힘을 얻고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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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연극처럼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가야 할 죽어야 할 이유가 더 크고 더 강하더라도 죽음보다는 삶을 택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토머스 조이너가 지은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개인들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그 역시도 심리학 대학원생 시절 아버지를 자살로 잃게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주변의 편견과 싸우며, 그는 유전학, 신경생물학, 정신분석학 등 인문사회학의 분야를 총동원하여 '자기 살해'라는 행동의 안과 밖을 재구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의 욕망'과 그것이 치명적인 자해로까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탄탄한 이론을 집대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삶의 욕망이기도 한 ‘자기보존 본능’마저 뿌리치게 만드는 죽음에의 소망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조이너에 따르면 이 욕망은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에서 비롯되며, 여기에 ‘치명적인 자해를 가할 수 있는 습득된 능력’이 더해질 때 자기 살해라는 극단의 불행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짐이 된다는 느낌’과 ‘소속감 단절’이 바로 '자살 욕망'을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 두 욕망을 자살 욕망을 싹틔우는 물과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집단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스스로가 유용한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욕구야말로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욕구가 좌절되어 스스로 쓸모없는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느낀다면 어떨까요?


“코트니, 내가 없어서 훨씬 더 행복할 프랜시스와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해 기운을 내주기 바라오.” (록그룹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이 아내에게 남긴 유서). “나는 아주 나쁜 인간이었어요. 이제 여러분들은 모두 나 없이 살 수 있게 됐어요.” (감전 자살한 10대 소녀의 유서). “이제 나는 다리까지 걸어간다. 도중에 누군가가 내게 미소를 지어준다면 나는 투신하지 않을 것이다.”(금문교에서 투신자살한 남자의 유서).


그리고 자살에는 '치명적인 자해'를 할 수 있는 기술이 동반됩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학습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종류의 경험을 통해 부상과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대조표준에 비해 훨씬 높은 자살경향성을 보이는 것이지요. 경험을 통한 친숙화 및 반대과정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격투기처럼 격렬하고 도발적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높은 자살률, 자살기도에서는 여성의 3분의 1에 불과한 남성이 오히려 훨씬 높은 자살성공률을 기록하는 현상, 젊은층보다 노년층의 자살률이 높은 까닭, 일반 사무직보다 의사에게서 자살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다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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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역시 자살했던 아버지처럼 유전적으로 세로토닌 시스템 장애를 지녔다고 하는데요, 그는 더 이상 자살이란 죽음으로 인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겪을 아픔과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하루입니다. 조금만 귀 기울이고 지켜보면 우리의 관심이 주변의 누군가에게 향해야하는 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계절에도 자살은 '금지'되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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