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볼수록 더 아름다운 너희들을 위해
인생의 이정표를 찾아: 심리상담센터? 혹은 0집?
요즘, 근처를 지나다보면 건물 하나 건너 하나마다 자리잡고 있는, 심리상담센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름도 다양합니다. 유명한 정신의학과 교수의 이름을 내건 곳도 있고, 엄마도 아이도 꼭 안아주고 위로해준다는 이름, 마음뿐 아니라 몸의 치유를 도와준다는 멘트를 내건 곳도 있습니다.
그 중 한 곳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마치 대형 프렌차이즈를 연상케 하는 전국 각지 지점들이 우선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 서울에는 거의 2호선 라인마다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지점이 있었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니, 상담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연령별, 목적별로 너무나 디테일하게 항목이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담자들의 분야별 스펙이 너무 다양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마음 상태에 따른 적절한 항목을 클릭하다보면 어떤 전문가와 만나야 할런지를 매칭해주는 시스템도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 상담 시스템까지 친절하게 쓰여있었습니다.
찬찬히 보고 있으려니, 마치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한번쯤은 클릭하여 어떤 문제라도 만들어서라도 속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듯 한없이 친절하고도 전문적인 곳에 일생에 단 몇 번이라도 방문해야 하는 게 마치 그 사람이 올바른 인간 됨을 지향하는 자질을 지녔음을 증명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사실 제 주변에는 다소 화려해 보이는(?) 심리센터를 방문하는 이는 극히 드문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이기에 미처 털어놓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1:1 상담이 가능하면서도 더욱 은밀하고 또 정확한(?!)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게다가 각종 비밀이 100% 보장되는 그런 곳을 방문합니다. 다른아닌 '점집'이지요.
사실상 상담심리나 점집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복잡하고 불편한 심경에 귀 기울여주고,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게 만드는 곳. 이후 스스로 그 문제를 인지하게 하고 해결책을 통찰하도록 만드는 곳. 다른 점이 있다면 상담센터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힘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격려해주는 대신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점집에서는 격려뿐만 아니라 부적이나 굿 등으로 직접 문제까지 해결해준다는 것입니다.
비용과 효율 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상담센터는 최소 3달 정도 주 1회 방문을 해야 어느 정도의 문제 해결력을 지니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점집은 1회 방문, 1시간 상담으로 상당히 많은 문제를 털어놓을 수도 해결책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고백, 위로, 고민 해결이라는 3단계를 시원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굳이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도 없다. 생년월일만 적어내면, - 영험한 분들은 얼굴만 보고도 충분하다는- 끝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방문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온갖 문제, 마음상처를 다 털어놓고 오면 그렇게 마음이 후련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며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을 다시금 보듬어 줄 힘이 생긴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현대인들은 역설적으로 소위 안면이 있고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그만큼 나를 드러내기가 껄끄럽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오히려 익명성을 보장해 주는 제3자에게 나를 드러내는 게 더 편한 것지요. 특히 내밀한, 가족과 관련된 부분들은 더 그러합니다. 인간이 지닌, 누군가에게 나의 비밀을 고백하고 싶은 욕망과 그럼에도 그에 따라 비난 받거나 평가받기를 두려워하는 욕망이 상충되는 지점이 아닐런지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엄마들이 더욱 선호하는 곳은 점집입니다. 그럼 상담센터의 주요 고객은? 주로 자녀들, 청소년 아이들입니다. 이는 무한 경쟁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 없이 학원으로 등하교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곯은 마음이 더 이상은 부모들에 의해 치유될 수 없다는 의미일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요? 부모가 가장 큰 가해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득 오랫동안 10대 아이들을 상담해 온 심리상담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빠서 부모 특히 엄마와 만나는 시간은 하루에 30분도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엄마들의 표정은 어떨까요? 매번 화난 표정입니다. 오로지 성적, 학교 평가 등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향한 시선은 늘 부정적입니다. 때문에 엄마들, 잘 웃지 않아요.
그런 엄마를 보고 큰 아이들 역시 미소를 배울 수 없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한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상류층 마담들의 은밀한 욕망에 대한 드라마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거칠 것이 없던 마담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가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신내린 무당이었지요. 두개골을 만져보고 미래의 점을 쳐 주는 무당 탓에 비싼 명품을 걸치고도 무당에게 머리 끄덩이를 잡힌 채 만신창이가 되는 마담들의 에피소드에 웃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집에 돌아간 마담들은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돌보는 데 기쁜 마음으로 헌신합니다.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빽, 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요즘 엄마들의 속앓이의 실체가 드러난다. 먹고 살만은 하고 나 없이도 가정 내 엄마 역할을 할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엄마들의 시선은 아이들의 성적관리에 자연스럽게 쏠리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거야말로 엄마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를 책임지는 남편에게도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소위 SKY는 가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도 속이 곯아만 갑니다.
이제 어쩌면 나의 문제를 내가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조차 귀찮고 부담스러워 하는 세상이 된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대부분 먹고 사는 문제, 삶의 외부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데 시간과 돈을 들여 투자하고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 잔고와 수입 지출에 온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인문학, 심리학 공부할 시간에 부동산, 재테크, 돈 버는 강의 등에 더 집중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고백컨대, 최근 알게 된 심사임당 님 유튜브 열혈 구독자이기도 하구요~) 반면 마음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데에는 단 1시간의 여유도 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이를 위해 5만원 투자 정도가 딱 적당한 우리가 된 것은 아닐런지요. 그 이상의 시간과 비용 투자는 오히려 과소비로 느껴지는 세상이 된 것 같기도 하여 씁쓸한 마음입니다.
가족 내 중심 역할을 하는 사상이나 가치관이 흔들리니 내 문제, 아이들 문제조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걸까요. 앞으로는 한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외부에서 전문가로 활동하여 돈을 벌고 또다른 전문가들에게 가정을 맡겨야 하는 시대가 되는 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한 지인의 고백을 올려봅니다. 점집을 나오는데, 그 분께서 인간적인 한 마디를 전해주셨다고 하네요.
"당신 아이는 애석하게도 학운, 관운은 없어. 하지만 걱정마. 돈복이 아주 그득히 있으니. 그 아이는 가만 둬도 알아서 잘 살거구, 엄마 아빠보다 돈도 더 많이 벌거야. 나중에 당신 아이 덕 볼 날 올테니 그리 알아!"
이보다 엄마 마음 놓이는 '복'이 어디 있을까요? 이 말 한 마디에 엄마들은 마음 그득히 다시 차오르는 자식사랑을 회복합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반에서 성적 중하위권인 아들(딸)이 대견해 보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 노후에 먹여살릴 아이는 저 아이지. 까짓거 SKY가 아니어도 괜찮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후 그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왔다고 하네요.
진부한 비유이긴 하지만, 잘 가꿔진 꽃밭을 보면 정말 다양한 갖가지 형태의 꽃들이 어쩜 그리도 각자의 자태를 뽐내며 눈부시게 피어있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가만히 둘수록 모든 꽃들은 자신만의 색깔대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잘 지켜지도록 돌보는 데 더욱 몸과 마음이 바쁜 우리, 부모들이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