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좋은 대학에 가야지! 너를 위해서"의 함정

사춘기 청소년들을 위한 심리학

고1인 영범이는 2주 째 가출 중이다. 친구네 집에서, PC 방에서, 찜질방에서 2주 째 버티는 중이다. 도저히 엄마와는 같은 지붕 아래 있을 수가 없다. 밤낮 없는 야간 수업에, 국영수 학원까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만으로도 벅찬데 엄마는 매일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아직 한참 부족하단다. 영범이의 잘못이라면 단 한 가지, S대 출신의 의사 부부인 부모님을 둔 것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영범이는 의대에 가고픈 생각이 아예 없다. 자신의 꿈은 신발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이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대학에 가서는 미술 공부를 좀 더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밤낮 없이 영범이 엄마는 ‘의대’, ‘S대’만 외친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좋은 대학만 들어가봐. 얼마든지 행복해질거야!” 영범이는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꿈과 전혀 다른 꿈을 강요하는 엄마도 마음에 안들지만 더군다나 좋은 대학을 곧 자신의 행복과 연관짓는 엄마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라도 위의 고민에 100% 공감할 것입니다. 혹은 대한민국 엄마들이라면 또한 누구라도 위와 같은 상황을 200%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한때는 영범이었고 저의 어머니 역시 또다른 영범 엄마였습니다. 이제는 곧 제가 영범 엄마의 역할을 맡아야 할 차례입니다.




한국에서 부모가 지닌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좋은 대학=인생의 성공=아이의 행복입니다. 하지만 이제, 위의 공식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닙.니.다. 영범이를 위해서는 앞의 공식을 재배열하고 단어를 조정해야 합니다. 즉, "영범이의 행복 --> 인생의 성공 --> 영범를 위한 학교"가 정답입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오히려 자녀를 부모의 울타리 밖으로 과감하게 '내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자녀 사이에 놓여있는, 자녀를 부모 의존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심적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덕목은 '내려놓음'입니다. 이 ‘내려놓음’은 곧 “아이의 인생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입니다. 또 “아이에게 세상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결정권을 부여해주기”입니다.


지금도 걱정과 근심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을 수많은 영범 엄마들에게 ‘내려놓음’이 주는 기쁨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 중 오늘은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믿음’의 중요성


자녀를 한 명이라도 키워본 모든 부모는 알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온전히 ‘믿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의 분노 지수가 가장 높아지는 때는 바로 ‘거짓말’을 시작할 때일 것입니다. 그 거짓말은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되어, 때로는 부모를 경악시키게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저희 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PC방에 출입하기 시작하더니 그 때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 간다는 사실을 알리자니 못가게 할 것이 너무도 뻔하고, 그렇다고 안가자니 친한 친구들이랑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을 못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 때부터 저와의 숱한 신경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게 얼마나 엄청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지, 아이를 믿지 못하게 되니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이 다 의심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통해 해석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학원 숙제를 안해간다거나,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당시 아이보다 더 심적 불안감이 컸던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사랑과 증오, 두 감정이 오가면서 아이가 집에 있어도 아이가 밖에 나가도 괜시리 아이에게 짜증을 냈고 끊임없이 훈계와 잔소리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다못한 남편이 제게 한 마디를 하더군요. “아이를 믿어줘 봐. 그런데 어설프게 믿으면 아이도 단번에 알아. 어설픈 믿음은 더 독이 될 뿐이야. 그러니 “전적으로, 전심으로” 아이를 믿어봐봐. 어떤 경우라도 난 네 편이고 너를 믿는다라고 말이야. 아이가 “어, 엄마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까지도 나를 믿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믿음을 계속 주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엄마의 믿음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그 신뢰는 엄마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결단으로 변화될 거야. 그 때가 되면, ‘아 내가 더 이상 엄마를 속이면 안되겠다.’라고 결심하게 될거야.”


그 때부터 저는 단번에 바뀌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아이를 믿음의 눈빛으로, 긍정의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그동안 했던 여러 훈계, 엄포, 화 등등의 갖은 방법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기에 마지막 선택으로 그 조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전적으로 믿는 훈련을 하다보니, 그 변화는 저에게 먼저 생겼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따뜻해졌고, 그러다보니 부드러운 표정과 말이 나왔습니다. 아이 또한 저의 변화를 알아챘고 조금씩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웃으며 그 때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그런 시기도 한 때인거 같아요~. 요즘엔 오히려 가라고 해도 바빠서 안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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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의 올바른 성장과 부모 믿음의 크기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하여 왔습니다.


그 중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은 ‘학습된 무기력’을 이야기하면서, “실패 경험이 쌓이고 현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경험이 누적될 때마다 무기력은 학습되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낙관도 학습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mism)' 라고 부르는데, 학습된 낙관주의는 곧 학업 성취로 이어지고 공부를 오래하며 도전적인 학습활동을 하는 데 꽤 유용한 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바탕에는 ‘미래 결과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학습 성과를 이루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 중 꼭 필요한 세 가지로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 ‘자기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 ‘자기 능력에 관한 믿음인 자기효능감’(출처:<올바른 공부법> )을 제시합니다. 말만 다를 뿐이지, 이 모두는 아이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어디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가정 내 ‘부모’로부터입니다. 그 아이가 부모로부터도 믿음을 받지 못한 채 10대 시절을 보낸다면, 인생의 성장 동력이 되는 ‘자기 효능감’을 발휘하기까지는 더욱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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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라고 한다면, 부모의 믿음은 변치않는 단단함으로 포장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어떤 말, 누구로부터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어야겠지요. 심지어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수많은 의심의 순간에도 부모는 끝까지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길로 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양육이란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성장 독립을 이끌어내는 것에 가장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이 때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부모의 욕심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것, 이렇듯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을 부어줄 때 자녀들은 멋지게 성장합니다.


이제는 "좋은 대학이 너를 위해 필요한 거야."라는 말 대신, "그 대학은 너로 인해 더욱 빛날거야."라는 말이 정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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