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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Feb 22. 2020

나의 '결핍'이 새로운 '희망'이 되기까지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는 다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동물농장>, <1984> 등의 책을 집필하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요. 얼핏 보아서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지녔기에 어려움 없는 청년기를 거쳐, 작가로 승승장구했을 것 같이 보이는데요 그의 이름이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불리기 전 ‘에릭 블레어’란 본명을 지닌 그의 청년 시절은 참 가난하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영국의 ‘이튼 스쿨’이라는 명성있는 사립학교를 나왔고 한 때 그럴 듯한 직장 생활도 했었지만, 어느 날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모든 노동을 그만두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며 본격적인 ‘글쓰는 노동자’가 됩니다. 그는 세상의 진실을 바로 직시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편안한 삶을 내던지고 가장 밑바닥인 하층민들의 인생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가 이루었던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에서의 성공은 어쩌면 그가 ‘살아낸’ 작가로서의 치열한 하루하루가 빚어낸 당연한 결과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수많은 기사, 평론, 소설 등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중 성공한 작품보다는 실패한 작품이 더 많았습니다. 때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바로 <엽란을 날려라>라는 제목의 책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목도 독특한 <엽란을 날려라>는 조지 오웰의 1935년 작품입니다. 서점에서의 근무 경험과 엘리노어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재능은 있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한 시인 고든과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인 로즈메리입니다. 주인공 고든은 마치 작가인 조지 오웰을 연상시키는데요, 그는 ‘가난이 어떻게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가’라는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며, 가난 분석가나 가난 이론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분석을 시도합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엽란’은 당시 유행처럼 사람들이 가정에서 키우던 다년초 식물로 이 글에서는 ‘중산층의 안락함’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돈’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과연 ‘돈’이 사람의 내외적인 본질을 규정짓는 모든 것인가?에 대해 끝없는 질문 공세를 던지고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의미있는 구절을 적어봅니다.     


가난이 주는 첫 번째 영향은 가난이 사고를 말살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할 것처럼 돈이 없다고 해서 돈으로부터 도피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반대로 우리가 살 만큼의 돈-추잡한 중산층이 말하는 ‘상당한 재산’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때까지 우리는 돈의 절망적인 노예가 된다.(92)    


그가 벌이고 있는 돈과의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 시점은 그의 급료가 일주일에 2파운드까지 내려가 더 이상 돈을 벌겠다는 기대를 비로소 포기했을 때인 바로 지금이었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문제는 포기에 따른 은근한 만족감이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2파운드로 산다는 것은 영웅적 행위가 아니고 초라한 습관이 되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만큼이나 위대한 사기다.(105)     


돈의 결핍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머리와 영혼이다. 정신의 죽음, 정신의 불결함- 이런 것들은 수입이 어느 수준 아래로 떨어질 때 불가피하게 우리에게 닥치게 된다. 신념, 희망, 돈, 이 세 가지 중에 성인만이 마지막 것 없이도 앞의 두 개를 가질 수 있다.(106)    


그것은 돈의 신에 대한 맹목적 숭배였다. 그는 여전히 돈의 규범을 경멸하고 거부했다. 어쨌든 조만간에 이곳에서 탈출할 것이다.(95)    


“단추가 하나도 없네요. 고든, 정말로 끔찍해요.”
“난 그런 거 없어도 상관없소. 난 단추따위보단 영혼을 가지고 있소”(206)    




조지 오웰이 지닌 돈에 대한 일종의 다양한 실험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큰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돈과의 전면전을 펼쳐서 과연 인간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돈의 한계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가, 하는 경험을 쌓았던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그는 결국 ‘돈’의 위력을 처절하게 받아들이고 굴복하고 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어느 누구도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요.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접고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을 실행합니다. 하지만 그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요. 다름아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록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나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 안에서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들 다히 말해 사랑, 이해, 배려, 공감, 행복 등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주는 진정한 선물이자 인생의 참다운 방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언가를 직접 해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 작은 깨달음들을 배워 나갑니다. 때론 벽에 부딪힌 듯 답답함이 느껴지는 날이 올 때에는, 조지 오웰처럼 그 문제를 직면하며 직접 부딪쳐 보고 또다시 뚜벅뚜벅 의연하게 남은 길을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지요.     




‘돈’보다 더욱 가치있는 ‘영혼’을 하루하루 의미있게 가꿔나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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