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1-1: 다섯여인의 은밀한 수다

김치에게 빠진 짜장면

by 랑랑이

저녁 7시쯤, 젊은이들로 욱실거리는 강남 거리 한 복판.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젊은 여인 한명이 있었다. 예뻐서가 아니라, 왠지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조금 어색한 모습때문이다. 젊은 감각의 미니스커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커리어우먼의 정장차림도 아닌, 캐주얼한 옷차림을 한 이 여인은 왠지 불안해 보이고 초조해 보이는 기색이 여력했다. 상의는 블랙 니트, 하의는 검정색 스키니 진을 입고, 거기에 검정색 단화까지, 올 블랙이다. 겉에 베이지 야생점퍼를 아무렇게나 걸친 모습은 갑자기 급하게 나온 듯 옷을 대충 입은듯 하다. 요즘 유행인 짧은 단발머리를 한 여자는 나이가 30대초반 정도로 보였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앞머리는 자른지 좀 된 듯 이미 눈섭을 뒤덮이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강남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유일하게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것-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여자는 쉴새없이 눈을 깜박거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자세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1초에 대여섯번은 깜박이는 것 같다. 얼핏 보기에도 마른 체구를 가는 여자는 몸에 어울리지 않은 무거운 백팩을 메고,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어깨를 움츠린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워보인다.


여인은 길을 찾는 듯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고 분주하게 무엇을 찾는 듯 하더니,이내 포기한듯 한숨을 후- 쉬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의기소침 해 있던 표정이 조금씩 살아나더니, 현란한 손동작(여인의 또 하나의 버릇 인 것 같다.)으로 허공에 대고 뭐라 재잘거린다. 그러면서 전화기에 대고 연신 머리를 끄덕인다. 전화기를 끊은후 여인은 바로 오른쪽 골목으로 꺽어서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7시 10분 쯤, 강남의 어느 한 골목길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레스토랑안 . 온갖 음식점으로 단장 되어 있는 강남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 Hoona's Cook란 이 조그마한 레스토랑 또한 첫눈에 봤을 땐 그닥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바로 맞은 켠에 계산대와 연결 되어 있는 오픈식 부엌이 눈에 띈다. 크진 않지만 정갈하고 깔끔해 보이는 조그마한 부엌이다. 그 왼쪽 켠 4인용 테이블에는 젊은 커플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서로 쳐다보는 뜨거운 눈빛을 보아하니 사귄지 100일이 안 지난 커플임이 틀림 없다. 오른 쪽 켠에는 테이블이 두개 놓여 있는데, 손님이 예약되어 있는지 두 테이블을 붙여 놓았다. 자리가 아직 비여있는 걸 보아하니 손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듯 하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레스토랑 분위기와 어울리는 따뜻하고 은은한 조명은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계산대 앞에는 20대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지키고 있었다. 앳된 목소리와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보아하니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 틀림 없다. 아르바이트생은 커플이 차지하고 있는 왼쪽 테이블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눈치를 살핀다. 부르면 바로 열정적으로 달려나갈 기세다. 그 뒤로는 부엌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 젊은 남성이 보인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가끔 나와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뭔가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하고, 지시도 내리는 걸 보니 레스토랑의 젊은 사장인듯 하다. 밝고 활기찬 얼굴에 훤칠한 키까지 소유한, 영낙없는 엄친아다. 검정 셔츠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요리를 하는 모습 또한 여간 매력적이지 않았다.


7시 20분쯤,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상쾌한 여인들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크게 들려오더니, 급기야 레스토랑의 문이 덜컥 열리면서 젊은 여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온다. 조용했던 레스토랑은 순식간에 생기로 넘쳐흐르고 꽉 찬 분위기다. 이 여인들이 바로 오른쪽 두테이블의 주인인 모양이다. 4명의 여인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그 중의 한 여인이 젊은 사장에게 말을 건넨다. "한명이 더 올건데요, 그 때 메뉴를 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한명이 덜 온 모양이다.


자, 이제 마지막 한명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무미건조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먼저 4명의 여인들을 찬찬히 훑어보도록 하자.먼저, 창가쪽에 앉은 여인부터 시작해보자. 몸에 딱 맞는 검정스웨터를 입은 여인은 목에 베이지색 바탕에 검정 체크무늬의 얇은 목도리를 둘렀다. 염색을 안한 검정색 머리는 자연스럽게 풀어헤쳤다. 하트모양의 큐빅귀걸이는 은은한 조명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여인의 몸에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몸짓, 손짓에서 풍기는 우아함, 그리고 다양한 얼굴표정들에서 나오는 사랑스러움. 성숙한 여인과 사랑스러운 소녀사이를 자유자재 오가는 여인은 남심을 흔드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듯 하다. 반지를 끼지 않은 걸 보아, 아직 미혼 인 듯 하다. 일단 여인을 매력녀라 부르자.


그리고 그 맞은 켠에 자리 잡은 귀엽고 젊어보이는 통통여인.얼굴에 통통한 볼살이 여간 사랑스럽지 않은 여인은 얼핏 봐도 가장 어려보인다. 30대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요즘 가장 유행인 연예인 단발머리, 일명 단발C컬 펌을 하고 있다. 머리 끝 부분에 약간 컬을 넣은 머리는 여인이 고개를 흔들때마다 따라서 찰랑찰랑거린다. 젊음의 상징인 피부는 반짝반짝 자체발광을 하고 있다. 상의는 타이트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H정장치마를 입은 여인은 성격이 털털하고 활달해 보였다. 모든 토크의 중심엔 그녀가 보인다.


통통여인의 옆자리로 시선을 바꿔보자. 연한 핑크티 위에 검정 양복을 세트로 차려 입은 여성은 얼핏 봐도 엄청난 미인이었다. 말하자면, 이영애(?)를 닮은 듯한 여인은 30대후반으로 보인다. 여인은 손짓 몸짓도 아주 다소곳하고 단아 해 보인다.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그녀는 가끔 한번씩 얇은 목소리로 토크에 낀다. 역시 상상한대로 목소리와 생김새가 가장 잘 매치가 된 좋은 예다. 목까지 오는 생머리를 귀 뒤로 넘긴 모습 또한 더없이 단아해 보인다.


그리고 이영애의 맞은켠에 자리 잡은 여인, 바로 처음 들어 올때 사장에게 말을 건넸던 그 여인이다. 눈매가 조금 날카롭게 생긴 여인은 딱 봐도 이 중의 리더인 듯 싶다. 우뚝 솟은 코는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닐거라는 증거이다. 옆에 앉은 매력여인과 같은 계열의 검정색 니트를 입은 여인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앞머리를 자연스럽게 옆으로 넘겼다. 여인은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듣는 좋은 습관을 가진 듯 하다. 우아하게 손으로 턱을 고이고 열심히 듣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예쁜 손가락에는 와인색의 매니큐어를 발랐고. 심플하지만 눈에 띄는 진주 귀걸이 또한 튀지 않으면서 충분히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디테일에 아주 예민한 여인 인 듯 싶다.


리더여인이 또 한번 재촉한다. "에스더 위원은 지금 어디까지 왔대요? 혹시 여길 못찾은건 아니겠죠? 고위원이 한번 전화를 해봐요." 고위원이라고 불리는 , 통통여인은 급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이와 동시에 급하게 울리는 통통여인의 휴대폰 진동벨소리. "여보세요? 아, 에스더위원님, 저도 지금 막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요. 지금 어디세요? ...아, 그래요? 그럼 거기서 쭉 직진 하셨다가요, 오른쪽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오셔서 쭉 오시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통통여인은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말한다. " 에스더위원님이 지금 근처에 와 계신대요. 지금 곧 오실 거 같아요."


나머지 여인들은 모두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이에요. 한국에 오신 지 얼마 안됐는데 혹시 길을 잃은 건 아닌건지 걱정했는데.. 마무리 할 것이 있어서 좀 늦는다고 안했어도 같이 오는건데.." 리더여인이 말을 한다.


그리고 계속 방치 해뒀던 우리의 잘생긴 젊은 사장이 드디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오늘 제가 전화상으로 예약할 때 말씀 드린대로 일단 메뉴를 준비 해주세요. 나머지 한분도 이제 곧 오시거든요." 역시 리더다운 모습. 모든걸 척척 계획대로 잘 정리를 해 나가는 깔끔한 모습을 보니, 업무를 할 때의 모습도 상상이 간다.


그리고 정확히 5분뒤 즉 7시 25분쯤 되었을 때, 조용히 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새로운 손님이 들어온다. 바로 방금 강남거리에서 한참 서성거렸던 그 젊은 여인이다.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아주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여인이 들어오자,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던 오른쪽 테이블의 여인 4명은 일제히 반색한다. "오~ 에스더위원, 드디어 왔네! 얼마나 걱정 했는데..어서 와서 앉아요!" 에스더라고 불리는 젊은 여인은 조심스레 다가와 단아한 이영애옆에 앉는다.


"근데 에스더위원님 그 어깨에 멘건 뭐에요? 혹시 카메라?" 사람들의 시선히 일제히 여인에게 몰린다. 여인은 순간 주목을 받는것에 아주 쑥스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네.." 그 뒷말을 잇기도 전에, 통통여인이 재잘재잘 대신 설명을 해 준다. " 부장님, 사실은 에스더위원님이 취미가 촬영이랍니다. 오늘 저희 팀 레이디 파티가 있다고 해서 일부로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오셨답니다.." "오~ 정말이에요? " 부장이라 불리는 리더가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되게 있어보인다..." 옆에 단아한 이영애도 맞장구를 쳐준다. "언제부터 사진 찍는걸 좋아하게 된거에요?" 매력여인도 뒤질세라 질문을 한다. "이거 완전 비싼 카메라 아니에요?" 통통 여인도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듯 물어본다.쉴새없는 질문 공세에, 여인은 어색한 듯 대답대신 얼굴에 잔잔한 미소만 머금었다.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