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되지 못해 괜찮은 나에게
마흔이 되면 좀 더 단단해질 줄 알았다. 적어도 누가 무심한 말을 툭 던졌을 때, 그 말을 곱씹으며 잠 못 이루는 일은 없어질 줄 알았다. 실망도 덜 하고, 기대도 덜 하면서, 담담하게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도 여전히 낯선 구석이 있고, 어쩌면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어떤 감정들이 마음 한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어때?"라는 말에,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괜찮아.” 하고.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직장에서 무례한 말을 듣고 돌아온 날도,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친 날도,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된 순간 겨우 겨우 나를 추스른 날도. 그저 아무 일 없는 척, 괜찮은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그게 어른인 줄 알았다.
이쯤 살았으니, 솔직히 감정의 파도쯤은 무던하게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인 관계도, 감정 조절도, 삶의 우선순위도 제법 단단해졌을 거라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무너지면 안 된다는 보이지 않는 각본이 나를 조이고 있었다. 무너지고 싶어도, 잠시 주저앉고 싶어도 누군가는 나를 보며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괜찮은 '척'을 했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힘든 건 그 자체가 아니었다.
힘든 걸 애써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감정은 숨길수록 더 곪아갔다. 차라리 털어놨다면 나았으련만. 그럴 여유도, 용기도 내겐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이라는 단어가 부담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게, 감정에 솔직한 순간조차 “무책임하다”는 눈초리를 받는다.
그러니 우리는 속으로만 앓는 거다.
사실은, 사는 게 너무너무 버겁고. 혼자 울컥하며 버티는 날이 점점 늘어가는데.
그런 날엔, 나를 위로해 줄 누군가가 간절했다. 그 누군가는 꼭 타인이 아니어도 되었다. 내 안의 나. 그동안 무시하고 밀어놨던 그 목소리.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내 마음의 친구.
그 목소리를 다시 들어 보려고 한다. 더 이상 ‘괜찮은 척’으로 나를 속이지 않으려. 아직 어른이 서툰 나의 괜찮지 않은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그 서툶조차도 나의 일부임을 인정해 보려고 한다.
어떨 땐 정말로 누가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기만 해도 울컥했다. “아니, 나 안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 오늘도 자기 전 뒤척이며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아직 덜 자랐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마흔은, 어른이 되었다는 증명서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걸 매일매일 실감한다.
스무 살엔 서툴러서. 서른 엔 바빠서 외면했던 내 감정이, 마흔이 되니 비로소 내 앞에 또렷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은 척을 멈추기로 했다. 안 괜찮은 날엔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나를 진짜로 돌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서툰 어른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어른스러운 '척이 아니라, 내 안의 '진짜 나'로 살아가고 싶다고. 나 자신에게 한번 말해본다.
“오늘은 좀 힘들어. 그래도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