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아직도 불안한가
서른아홉이 되고 나서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서른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꽤 많은 걸 감췄던 시기였다.
서툴러도, 힘들어도, 아직 젊다는 말로 위로받을 수 있었고. 미래가 조금 불투명해도 "괜찮아, 아직 서른이잖아"라는 말이 어느 정도의 여유를 보장해줬다.
그런데 마흔은?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벼랑 끝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제는 결과로 말해야 할 것 같고, 무언가를 이뤄놓은 사람이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등 뒤에서 계속 밀어댔다.
“요즘 뭐 하고 지내?”
별 뜻 없이 던지는 질문인데,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뭐 하고 지내냐고 묻는 말에 나는 늘 비슷한 대답을 했다.
“그냥… 잘.”
그 '잘' 의 안에는 감춰둔 불안, 어설픈 희망, 고단한 일상,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눈치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었다. 서른아홉이라는 숫자가 마치 시한폭탄 처럼 느껴졌다. '곧 마흔이다'라는 문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일까.
엊그제까지도 스물아홉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은 어김없이 또 하나의 십 년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여자 나이 마흔. 이 단어는 유난히 낯설고도 무겁다. 앞자리 숫자 하나 바뀌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마흔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는 삶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리 잡은’ 사람이어야 하며, 무언가를 ‘이뤄놓은’ 어른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마흔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점점 더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정말 내 길은 맞는 걸까?’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 맞나?’
그리고, 그 물음들 앞에서 자주 멈칫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잘 살고 있는지도,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삶이라는 이름의 큰 방, 아직도 나는 문 앞에 서 있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한다. 인생이 하나의 방이라면, 그 방 안에는 ‘마흔’이라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완성된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앉아 담담하고 조용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른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전히 내 마음 하나 다룰 줄 몰라 울컥하는 날이 많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론 누구보다 복잡한 감정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자꾸 스물일곱의 나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희망이란 걸 함부로 말할 수 있었던 나이. 무언가를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 말이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사는 걸까."
"무엇을 포기하며 살고 있는 걸까."
"나만 이렇게 불안한 걸까"
라는, 외로운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제법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커리어도, 가정도, 인간관계도 큰 문제 없어 보이고, 여유 있어 보이고, 정돈된 듯하다. 그런데 웃긴 건, 한 잔 술이 들어가고, 늦은 밤 진심이 조금씩 묻어나올 때면. 거기서, 그 자리에 멈춰 있다는걸 알게된다.
“나도 요즘 좀 그래.”
“가끔 다 그만두고 싶어.”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말은 달라도, 감정은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의 언저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겉으론 괜찮아 보이기 위해, 어른인 척 연기하며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던 거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실 하나로 숨통이 조금 트였다.
어쩌면 마흔은 완성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실수하고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시기.
그래서 더 이상 ‘어른다워야 한다’는 말에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른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상태가 아니라, 그저 조금씩 나를 이해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마흔의 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문을 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서른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그때의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지?”
“그 시절을 지나온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거 아닐까?”
지금의 나도 미완성이고, 불완전하고, 때로는 유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날들을 통과한 '나'라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걸 실패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진짜 삶’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은 계속 흘러가고, 마흔의 나는 여전히 서툴게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좀 더 솔직한 어른이 되기로. 마흔이니까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각본에서 조금씩 벗어나 보기로.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 사실이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