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서툴고 나약하다.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건데?

by 라온



혹시 나, 지금 너무 이상하게 보이나



그러고 나면 그날 하루는 괜히 기운이 빠진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괜히 분위기를 흐린 건 아닐까?’
‘아, 그 말은 안 하는 게 나았나…’


눈치.
그 단어는 가볍게 들리지만, 실은 우리 삶에 깊게, 너무도 깊게 스며든 감정이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되었을까


스스로 돌아보면, 눈치 보는 건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 눈치를 봤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 눈치를 봤고, 고등학교 때는 성적표의 눈치를 봤다. 사회에 나와서는 상사의 기분을, 팀 분위기를, 회식 자리의 눈치를. 끝없이 눈치 차여만 살아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이쯤 되면 더는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살 만큼 살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고,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고, 섬세하게.






표정의 주름보다, 분위기의 기류가 더 무서웠다



내가 눈치를 본다는 건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렵다는 뜻이었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까 봐.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진 않았을까 봐.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회의 중 누군가의 짧은 한숨, 단톡방의 뭔가 어색한 정적, 괜히 내 얘기만 씹힌 듯한 톡방 흐름. 별일 아닐 수도 있는 것에 마음을 쏟고, 혼자 해석하고, 혼자 자책했다. 감정이란 건 대놓고 쏟아질 때보다 아무 말 없이 흘러나오는 침묵 속에서 더 날카롭게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먼저 반응을 살폈다.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지금 분위기에 적절했을까. 괜히 불편함을 주진 않았을까.


그런 마음은 결국 내 말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고, 내 감정을 뒤로 미루는 습관을 만들었으며, 나는 점점 더 조용한 사람이 되어갔다.






눈치를 보다 보면, 결국 나를 놓치게 된다



눈치를 본다는 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일이다. 그 말은 곧, ‘나는 나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뒤로 미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말에 기분이 상했는가. 혹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가. 이런 정작 중요한 내 감정은 꾹꾹 눌러놓으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아냐, 이 정도는 참아야지”
“그냥 넘어가자, 또 민망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는 사이 내 감정은 조금씩 흐려졌다. ‘이게 나의 감정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맞춘 반응인지’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잦아졌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의 실루엣조차 흐릿해진다.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내 마음을 다시 훈련시키는 중



이제는 조금씩, 눈치를 멈추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그게 단번에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을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습관부터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기 전에 내 기분은 어떤지 묻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망설이지 않고 꺼내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물론, 모든 말이 받아들여지진 않을 거다. 오해도 생길 수 있고, 어긋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관계란 원래 그런 것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눈치 없이 말하지 않되, 눈치만 보며 사는 삶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내 마음에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쯤은 허락해 주고 싶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느낀다.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매우 서툴고 나약 한 존재라는 걸.






타인보다.

세상보다.

먼저 나를 바라보는 삶.


그리고 작은 의문 하나.

‘나답게’ 살고 싶은데, 정작 '나'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그건 내 잘못일까, 아니면 사회가 너무 많은 틀을 강요한 걸까?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