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는 연습
SNS에서는 다들 자기답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는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났고, 누구는 타투이스트가 되었고, 누구는 농사짓는 삶을 시작했단다. 화면 너머의 그들은 하루하루가 자기 확신으로 단단해 보였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나답게 살고 있나?”
그 질문 앞에서 늘 말문이 막혔다. '나답다'는 게 뭘까. 보여주기식 말고, 정말 '나' 다운 것 말이다.
좋아하는 걸 하며 사는 것?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것?
내 안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삶?
그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또 다른 물음이 따라왔다.
근데, 나는 대체 뭘 좋아하지?
나는 누구지?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놓쳤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수학보단 국어가 좋았고, 시끌벅적한 곳 보다 조용한 곳이 좋았고, 혼자 책 읽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근데 언젠가부터 그게 흐려졌다. 좋고 싫음보다 유용하고, 효율적이고, 괜찮아 보이는 걸 선택하게 됐고, 감정보다 ‘맞는 답’을 먼저 찾게 되었다.
나를 내려놓기 시작한 건 그게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조직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가족 안에서는 불만보다는 이해를 선택해야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갈등을 피하려면 내 마음을 적당히 눌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잘 모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너답게 살아”라고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남 눈치 보지 말고 너답게 살아야지.”
“너만의 색깔을 지켜.”
이 말들은 얼핏 들으면 따뜻하고, 위로 같지만 나에겐 때때로 무겁고 불편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하지만 막상 내 삶에 대입하면 하나도 쉽지 않은 말들. 왜냐면, 정작 나는 내가 누군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나’를 다시 배우는 중이다.
나를 되찾기 위한 작은 실험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음악을 틀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를 느끼는 연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딱 10분이라도 시간을 내보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걷고 싶은 방향으로 길을 틀어보기
괜히 카페 하나 들어가 앉아 일기를 써보기
오래된 메모장에서 예전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기
누군가의 말보다, 내 기분에 귀 기울여보기
그 모든 건 작고 느릿하지만, 분명히 나에게로 향하는 걸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
나는 생각보다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고, 사소한 일에도 오래 마음을 쓰는 편이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고집도 있다.
예전엔 이런 나의 성향들이 불편했다. 왜 이렇게 예민할까, 왜 이렇게 눈치를 볼까, 왜 이 정도도 쉽게 넘기지 못할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 모든 면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조각들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게 진짜 ‘나답게’ 사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고.
세상이 정한 ‘괜찮은 사람’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는 내가 나를 조금 더 알아가고, 이해하고, 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려 한다.
어쩌면 '나답게 산다'는 건 대단한 선택을 하거나 인생을 확 바꾸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매일 아침, 거울 속 나에게 조용히 인사하며 작은 마음의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는 그 꾸준하고 소소한 다정함일지도.
‘나답게’라는 말이 거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누군가가 봐서 멋진 삶이 아니라, 내가 살아내며 만족하는 삶이길.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를 다시 부르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물어야 할 때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무엇이 힘들었고, 무엇이 기뻤는지. 그 어떤 피드백보다 가장 먼저, 가장 솔직하게 내가 나에게 물어볼 수 있기를. 그리고 조금씩 대답해 줄 수 있기를.
처음엔 서툴고, 어색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말을 멈추지 않는 거니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책임질 일은 많은데, 마음은 아직도 너무 어리다. 그게 어른이 된다는 건가? 무거운 책임과 서툰 감정 사이, 그 어디쯤에서 나는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