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사람이 외로운 이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외로움을 삼키는 모든 어른이들에게

by 라온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말고는 아무도 나를 책임질 사람이 없겠구나.’



누군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고장이 나면 내가 처리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설명해야 했다. 모든 선택의 끝엔 ‘나’가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바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면, 나는 여전히 이 역할이 낯설다.






책임은 고요하게, 그러나 무겁게 찾아온다.


책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서서히 마치 가랑비처럼 조용히 스며들었다. 처음엔 부담스럽지 않았다. 작은 일들이었다. 퇴근길에 부모님 약을 사는 일, 기념일을 일일이 기억해 케이크를 예약하는 일, 팀 회식 날짜를 조율하고 미리 계산하는 일. 그런 일들은 누가 하든 상관없었지만, 언젠가부터 대부분은 결국 내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일들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고, 시키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 편했다. 그게 내가 어른이 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책임의 반대편엔,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있었다.


책임은 어쩌면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소중하니까 돌보게 되고, 지키고 싶으니까 챙기게 된다. 하지만 책임이 사랑을 넘어 의무가 되는 순간, 그 무게는 매우 버거워진다.


“누가 시켰어?”
“그냥 하지 마.”


말은 쉽지만 한 번 익숙해진 책임의 자리에 나 아닌 누군가가 들어와 주는 일은 드물다. 책임지는 사람이 결국 모든 감정을 감싸 안게 된다. 불편함도, 실망도, 서운함도, 참고 넘기는 쪽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책임감은 점점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를 따라왔다.


누구도 아무 말하지 않는데 마음속에는 늘 체크리스트가 떠 있고. 머릿속은 다음 주 일정으로 가득하고. 나 하나 빠지면 어딘가가 무너질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


책임을 짊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서툴다.


내가 누군가의 기대가 되고, 의지가 된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언제나 괜찮은 사람’,‘항상 잘 버티는 사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굳어질 때, 나는 점점 내 감정을 숨기게 된다.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괜찮아, 내가 할게” 가 더 익숙해진다는 거다. 문제는 이 모든 책임을 지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것.


“너는 괜찮아?”

“너는 지금 어때?”


그런 말은 잘 오지 않는다. 책임지는 사람에게는 감정보다 기능을 기대하는 게 우리 사회의 습관이 되어버렸으니까.






마흔 즈음, 책임과 자유 사이의 균형을 배우는 중



이제는 안다.


모든 걸 떠안는 게. 혼자 감당하는 게 진짜 어른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오히려, 나를 챙기지 않으면 그 어떤 책임도 오래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내 몫의 책임은 내가 껴안되, 내 감정과 내 시간, 내 여유 역시 정당하게 지켜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작은 거절을 배우고 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말해보는 연습, “그건 지금은 어려워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 책임은 관계의 한 방식이지, 존재의 증명은 아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한 사람이다.


'책임지되, 사라지지 않는 법'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이제는 인생의 전제가 되었기 때문일까. 마음처럼 쉽지 않지만, 나는 현재 그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책임 안에서도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한다. 기계처럼 반응하지 않고, 의무만 수행하지 않으며, 감정과 마음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책임지는 사람의 표정이 점점 사라지지 않기를.

다정하고, 때론 유약하고, 솔직하게 웃을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누구의 보호막이 되기 전에, 내 마음부터 먼저 품어주자고.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잃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해진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책임지는 삶이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 까지껏, 되어보자. 대체 불가능 한 사람이.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