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건 없지만, 잃은것도 없잖아.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허탈함을 남긴다.

by 라온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남들 쉬는날에도 쉬지 않고 일했고, 몸이 아파도 일을 미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게 맞나...'


그런데.

오늘도 나는, 늘 그렇듯 통장 잔고를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






분명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는데, 그 바쁨이 쌓여서 만든 결과가 이게 맞는지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남들은 다 잘만 모으고 살던데…”


솔직히 나는, 많이 모으는것 보다 많이 버는쪽으로 초점을 두며 살아왔다. 한해한해 지날수록, 불안해져만 가는 마음을 외면하듯. 무언가를 배우고, 더 벌기 위한 공부를 끊임 없이 해 왔던거다.


그러나 결국.

인풋만 있고 아웃풋은 없던 내 지난날에, 남은건 텅 비어버린 지갑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월급날이 되면 늘 계산기부터 두드렸다.


공과금, 보험, 대출 이자, 생활비, 그리고 ‘남은 돈’이 아니라 ‘남겨야 하는 돈’이 얼마인지 따졌다.


나는 그때까지도 모두가 다 나처럼 사는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 다른 리듬으로.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걸 알게되니 어쩔수 없이 모난 마음이 튀어나오고야 만다.


그들을 보며 자꾸 비교하게 되었고, 비교는 곧 자책이 되었다.

‘나는 여지껏 뭐 한 거지?’
‘이 나이 되도록 뭘 남긴 게 없네…’
‘혹시 나 혼자만 뒤처지면 어쩌지?’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돈이 없으면 삶의 여유는 참 쉽게 사라지는건 펙트다.


갑자기 아프면 병원비부터 걱정이고, 퇴사를 고민해도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이 발목을 잡는다.

누구는 ‘꿈을 쫓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일단 눈 앞에 닥친 월세부터 걱정해야 하는게 현실인 거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감정보다 숫자에 더 예민해진 나를 발견한다. ‘좋은 날’을 만드는 것도, ‘여유’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도, 모두 돈이 허락해주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굳어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을 택하게 된다.



그동안 참 대견하게 살아왔다, 나자신.


적은 월급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람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때로는 잠을 줄여가며 일했고, 마음이 부서져도 다시 일어나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비록 통장은 얇지만, 나는 나를 쉽게 쓰지 않았다.

느리더라도, 내 방식으로 가려고 노력에 노력을 무던히도 했더랬다.


누군가는 이미 집을 사고, 누군가는 투자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퇴직금을 계산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지만.


괜찮다. 나는 그들보다 아주 조금 느릴 뿐이다.

돈은 분명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도구지만 그 도구가 나의 가치 전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이제라도 알게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 늦게 깨닫고.
조금 늦게 준비하고.
조금 늦게 걷고 있을 뿐.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속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나의 방식으로 삶을 배우는 중이다.


돈 걱정 없는 삶은 여전히 멀기만 하지만, 그 길 위에 서 있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느린 삶도, 충분히 의미 있는 건 아닐까?


늦게 꾸는 꿈이라도, 늦게 찾은 길이라도, 그게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길이라면 말이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