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에서의 일주일, 휴식과 방치 사이에서
가족들보다 먼저 나 홀로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중국의 월세 시스템은 계약 후 즉시 입주가 기본이라, 한국처럼 몇 달 전에 미리 집을 구해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네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부동산을 전전하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내가 먼저 가서 집 구하고, 인터넷 깔고, 청소 싹 해놓을게. 당신은 한국에서 편하게 있다가 와."
아내에게는 비장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의도치 않은 묘한 설렘이 올라왔다.
이 모든 상황 덕분에, 나는 합법적으로 '일주일 간의 완벽한 독신 생활'을 확보했으니까.
장장 3년 만이다. 아내의 눈치도, 아이의 울음소리도 없는 168시간.
처음 3일은 전쟁 같았다. 한국에서 미리 연락해 둔 중개사들과 아침부터 밤까지 집을 보러 다녔다.
중국의 아파트들은 한국과 개념이 달랐다. (이 충격적인 부동산 문화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겠다.) 관리가 엉망인 집이 수두룩했고, 차 없이 다닐 아내와 아이를 위해 유치원 접근성과 주변 인프라까지 따져야 했다.
입국 전 그려둔 플랜 A, B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현지 사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연식에 비해 과도하게 노후화된 건물, 단지 주변의 슬럼화 현상, 부족한 인프라...
그럼에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단 하나의 매물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발품을 판 끝에야 최선의 선택을 마쳤다.
계약 도장을 찍고 나니 4일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자유 시간’이 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할 게 없다.
항상 꿈꿨던 시간이었다. 혼자 여행도 가고, 맛집도 가고,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자야지 했었다.
막상 멍석이 깔리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유명 관광지라도 가보자.'
지하철을 타고 나섰다. 그런데 정말 좋아 보이는 풍경 앞에 서자 휴대폰을 꺼내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이건 나중에 아내랑 와야지. 아이랑 오면 좋아하겠네.'
나의 여행은 언제나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칭다오까지 와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한국에서처럼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 뉴스를 보고 유튜브를 뒤적거렸다. 공간만 바뀌었지, 하는 루틴은 한국의 휴식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고작 3년이었는데, 내 몸과 머리는 이미 '육아 모드'에 완전히 패치(Patch)되어 있었나 보다.
누군가를 돌보고, 시간을 쪼개 쓰던 습관이 몸에 배어버려서일까.
갑작스럽게 주어진 무제한의 자유는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마치 덩그러니 세상에 '방치'된 것 같은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퇴사했을 때도 비슷했다. '노동 해방'을 외치며 나왔지만, 막상 출근하지 않는 평일 아침은 무겁고 낯설었다. 준비되지 않은 자유는 독이라더니,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실행하기 어렵고 마음은 자연스레 느슨해졌다.
그래서 퇴사 직후 나는 어떻게든 외출을 강행하고자 운동 레슨을 등록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적당한 구속' 속에 가두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고 이기적이다.
구속당할 때는 자유를 갈망하고,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해하며 다시 구속을 찾아 나선다.
어쩌면 지금의 육아도 내가 선택한 '가장 행복한 구속'이 아닐까.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아이가 주는 웃음 한 번에 녹아내리고, 그 책임감으로 하루를 살아내니까.
문득 덜컥 겁이 난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 내 품을 떠나고, 이 육아라는 구속마저 사라지는 노년이 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은퇴 후 우울증을 겪는 노인들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소일거리'라도 찾아 나서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소속감이 사라진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고립일 테니까.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는 지금, 내 자유는 딱 하루 남았다.
웃긴 건, 그렇게 심심해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했으면서 "하루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다시 아쉬워진다는 거다.
내일 이 시간쯤이면 밥 안 먹겠다고 도망 다니는 딸아이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겠지. 그 전쟁터가 벌써 눈에 선하다.
결론은 버리는 것에 있었다.
진정한 자유는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구속이 있어야 해방감을 느끼고, 빈 시간이 있어야 바쁨의 가치를 아는 존재니까.
그러니 애써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끌리는 곳이 있으면 가고, 없으면 침대에 누워 천장이나 멍하니 바라보지 뭐.
어차피 내일부터는 다시 행복한 구속이 시작될 테고,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이 정적이 미치도록 그리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