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급지아파트와 명품을 욕망하는 진짜 이유 (하)

명함을 잃은 어른의 헛헛함, 그리고 가족

by 라온

과시욕의 진짜 이름, 존재감의 구걸


1편에서 고백했던 그 지독한 과시욕과 상대적 빈곤감. 그 찌질하고 얄팍한 감정들의 밑바닥을 끈질기게 파고들다 보면, 결국 우리는 하나의 근원적인 결핍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내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다'는 맹렬한 갈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가 그토록 상급지 아파트에 목을 매고, 주식 시장에서 남보다 더 벌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돈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거대한 자산과 타이틀을 통해 남들에게 "나 이렇게 번듯하게 잘 살고 있다"고, "내 존재가 이만큼 가치 있다"고 소리치고 싶은 것 아닐까.


결국 무언가를 맹렬히 과시하려는 욕망은, 타인에게 내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비틀린 구걸이나 다름없다.

이 존재감의 결핍은 참 슬프게도 나이가 들수록 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젊을 땐 직장에서 내는 성과로, 혹은 조직이 달아준 번듯한 직함으로 내 존재를 꽤나 쉽게 확인받는다. 하지만 그 명함을 내려놓고 서서히 늙어가면 세상 누구도 나를 예전처럼 쳐다봐 주지 않는다.


나이 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유독 섭섭해하고 집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는 옛말이 참 뼈아프게 맞는 말이지 싶다.

우리 집 세 살배기 아이가 하루 종일 칭얼대며 아빠에게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하듯, 늙어버린 어른들 역시 사회적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확인이 사무치게 절실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거대한 존재감의 확인을 오로지 '가족'에게서만 온전히 찾으려 할 때 발생한다.

안정적이던 공기업 타이틀을 떼어내고 아내를 따라 이곳 칭다오라는 낯선 타국에 오니, 나를 확인해 주는 사회적 관계가 턱없이 빈곤해졌다. 때때로 밀려오는 이 헛헛함과 외로움의 진짜 이유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의 관심만으로는 내 안의 그 거대한 결핍이 다 채워질 리 없다. 게다가 가족 역시 나처럼 매일 타인의 인정과 위로가 필요한 나약한 인간이지 않은가. 내가 나의 결핍을 채우겠답시고 가족에게 온전히 의탁하고 존재감을 갈구하면, 상대는 그 무거운 짐에 결국 지쳐버리고 만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화목한 가정을 꾸리려면, 가족 외의 공간, 즉 나만의 일이나 취미, 고독한 시간 속에서 내 존재감의 일부를 스스로 채워와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기대를 내려놓고 온전히 내어주는 연습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독한 존재감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완벽한 탈출구 같은 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하루아침에 내가 해탈한 성인군자로 변할 수 없듯, 죽을 때까지 이 징그러운 인간의 본성을 뒤집어쓰고 살아가야겠지. 앞선 글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찌질함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뿐이다.


나는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안달 난 인간이고, 누군가 알아봐 주길 미친 듯이 갈구하는 애정결핍의 인간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억지로 나를 포장하려 들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내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너무 애쓰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내가 먼저 이만큼 해줬으니 저쪽에서도 알아주겠지, 하는 얄팍한 계산부터 버려야 한다. 내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혼자 섭섭해하고 상처받는 게 또 우리네 얄팍한 마음이니까.


그저 먼저 채워주고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 마치 깊은 산속에서 거창한 수행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눈앞에서 보고 살고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주기만 해도 그저 예뻐서 미칠 것 같은 우리 아이를 볼 때처럼 말이다. 그 조건 없는 내어줌이 성인에게도, 나의 아내에게도, 늙어가는 부모에게도 똑같이 묻어날 수 있다면 이 팍팍한 삶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여전히 나는 으리으리한 상급지를 보면 슬그머니 배가 아프고, 주식 시장이 나만 빼고 오르면 포모(FOMO)에 시달리거나, 작은 성공이라도 거두면 또다시 득의양양하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본다.

참으로 나약하고 징그러운 굴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내 안의 그 깊은 밑바닥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사실 하나로 조용한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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