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원을 받고도 서민의 삶이 가혹해지는 이유
전쟁 이슈와 기름값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무려 26조 규모의 추경이 편성된다고 한다. 소득하위 70% 국민들의 손에 10만 원에서 최대 60만 원 현금이 쥐어질 모양이다.
사실, 어느 정권이든 위기 상황에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돈을 푸는 것은 꽤나 익숙한 풍경이긴 하다.
팍팍한 살림에 뜻밖의 현금이 들어오는 건 분명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다. 당장 계좌에 꽂히는 금액이 반갑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이면을 조금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 뒤에 조용히 따라붙을 거대한 '청구서'가 아른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런 정책을 무작정 특정 정권의 포퓰리즘이나 편 가르기로 몰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국가를 운영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라서 뻔히 보이는 부작용을 감수하며 돈을 푸는 것은 아닐 테니까.
냉정하게 말해, 누군가에게는 훗날의 거시경제나 화폐 가치 하락 따위보다 기름값 파동으로 인한 당장 내일의 생계가 더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민과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하는 그 처절한 현실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자본주의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는 자의 시선으로 이 서늘한 룰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론부터 조심스레 말하자면, 이 달콤한 현금 살포는 돌고 돌아 결국 서민의 삶을 더 가혹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국가가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면, 필연적으로 그만큼 화폐의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내 지갑 속에 들어온 60만 원은 숫자로만 존재할 뿐, 실제 구매력은 이미 돈이 풀린 그 순간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조용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서민의 부를 뺏어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세금이다.
만약 서민들이 이 돈을 오롯이 자산을 취득하는 데 사용한다면 훌륭한 방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계가 급한 이들은 당장의 필수 소비재를 사거나 공과금을 내는 데 돈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이렇게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돌고 돌아, 자산가들이 들고 있는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다시금 밀어 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내 임금 상승률을 아득히 추월해 버리는 순간, 화폐 가치 하락의 뼈아픈 고통은 자산을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금처럼 고환율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 상황은 한층 더 치명적으로 변한다. 우리나라는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나라다.
환율이 치솟으면 수입해 오는 원자재 물가가 폭등하고, 이는 결국 기름값과 같은 필수 생계비의 무자비한 상승으로 직결된다.
기업들 역시 높아진 원가를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로는 채용을 줄이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돈이 풀려서 물가는 오르는데, 내 일자리와 소득은 오히려 위협받는 끔찍한 이중고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거시 경제의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당장의 진통제에만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비록 오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가의 지원을 기꺼이 받더라도, 훗날 내게 날아올 그 서늘한 청구서의 정체만큼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만히 현금만 쥐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시대에는 가장 확실하고 위험한 손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는 것만이 이 험난한 야생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