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

by ondo

2026년 1월 1일.

새 달력을 꺼내어 책상 앞에 올려놓고 나는 올해는 제발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본다.

작년은 힘이 들고 지치는 해였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불행은 없었는데 솜을 팔다리에 가득 매단 채 물을 건너는 것 것처럼 힘이 들었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서 집에 가고 씻고 먹고 아이를 돌보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마음에 약간의 우울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무얼 할 의지가 도통 올라오지 않는 내적 히키코모리 같은 상태였달까.

내향인으로서 상황(미혼인 1인 가구)만 허락했다면 아마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최소한의 것만 하고 방 안에 숨어 살았을 것이다.

사람이 희망을 안고 목표를 지향하는 삶을 사는 것도 텐션이 어느 정도 올라와야 가능한 것이구나, 깨달았던 날들이었다.


작은 일일지라도 맺음이 안 되는 것 같고, 타이밍이 안 맞고, 좋은 기운이 일부러 나를 피해 가는 것 같은 그런 운명적 확신론에 이끌리기도 했었다.

‘올해 왜 이러지? 왜 유달리 힘들지?‘

남편에게 지난해 가을쯤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올해 유난히 힘들어. 빨리 25년이 지나갔으면 좋겠어.‘

남편도 올해 마가 낀 것 같다면서, 뭘 해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보통 상대방이 나의 기분과 같은 주파수를 맞춰주면 기분이 나아지곤 하는데 남편이 그런 대답을 하니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남편과 나는 한 팀인데, 한 배를 탄 동지인데 ‘당신마저 그러면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걸까?‘하는 염려가 내 마음을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이고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고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다 보니 어제 드디어 묵은해를 보내줄 날이 왔다.

아쉬운 마음보다 ‘그래. 빨리 좀 가라.‘하는 마음이 컸다.

우주론적으로 보면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일관되게 도는 것일 뿐, 어제와 오늘, 2025년과 2026년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생명이 유한한 존재이고, 시간의 구획마다 마음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붉은말의 해는 내게 황금 돼지라든가 푸른 뱀이라든가 하는 익숙한 색과 띠의 조합과는 달리 낯선 해이다.

잘 모르는 해이니만큼 나와 나의 가족이 나아가는 길도 미지의 길을 걷되, 희망을 품고 나아가길 바란다.


윤무에 싸여있는 길을 걷고 있지만 불투명한 시계가 확보되었을 땐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무턱대고 긍정적인 희망을 우리도 한 번쯤은 품어보면 좋겠다.


좋은 일이라는 게 커다란 행운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일이란 건 가족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작게 웃을 수 있는 일, 그만하면 선방했다는 안심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성취를 느끼고, 그로써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걸 희망한다.

성취와 근성, 인내와 꾸준함, 묻지 않고 그냥 하는 것, 투덜대지 않고 그저 하는 마음과 일관된 행동.


내가 유독 어려워하고, 작년에도 못 했고, 재작년에도 못 했던 것을 올해는 꼭 해보자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곧 흐트러지고 무질서한 일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새날의 다짐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때가 올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1월 1일이니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의 주문을 걸어본다.


keyword
ondo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팔로워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