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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0. 2024

밥에 대한 수다

밥 앞에서는 나도 투사가 된다.

엄마가 조석으로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살 땐, 맛이 있네 없네 ‘주제넘게’ 평하지 않았다. 해 주시는 대로 묵묵히 먹었다.

“오늘은 감기 기운이 있는데 콩나물국이라 좋아요.” 정도의 말로 고마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을 뿐 밥투정은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20평이 채 되지 않는 빌라에서 다섯 명이 살았다. 부엌이라고 해봐야 어른 두 사람이 같이 들어갈 수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거기서 엄마는 가스불 세 개를 동시에 켜놓고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식사 준비를 하셨다. 열 살짜리 마음에도 '엄마가 도망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으니 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가정 내 암묵적인 평화 조약 위반이었다.


어렸을 땐 밥보단 밥을 하는 나의 엄마를 보며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관점이 바뀌었다. 나의 시선은 오롯이 밥에 머문다.


‘사람에게 밥이란 무엇인가?’


밥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잦고, 길어졌다. 생명의 유지는 좋은 밥이든 나쁜 밥이든 그저 먹으면 될 테지만, 잘 성장하려면 어떤 밥을 먹여야 하는 것일까? 아이를 낳자마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 보육기관을 선택할 때 점심과 간식의 재료가 첫 번째 조건일 만큼 밥에 진심이었다.


이유식을 만드는 데도 애를 썼다.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2km를 걸어서 한oo에 가 재료를 사고, 세 끼니를 매번 만들어서(찌고, 다지고, 갈고, 끓이고) 아이의 식사를 준비했다. 품이 많이 들었다.


아이가 원재료의 맛을 먼저 알기를 바랐고, 멀고 먼 식습관의 첫발을 잘 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온갖 양념의 짜고, 달고, 고소한, '맛이 있는'것들이 어린 혀를 휘감기 전에 '감자의 본래 맛은 이런 맛이다.'라고 감각으로 먼저 경험할 수 있도록.


요즘엔 유사 음식이 진짜 음식보다 더 좋은 것인 양 포장 가능한 세상이다. 광고의 힘이다. 하지만 나는 경계한다. 화학 첨가물 범벅인 가공 식품,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뒤엉킨 식품, 방부제나 고운 색소로 보기 좋게 만들어진 초가공식품들을 사절한다.

조리 단계는 단순하고, 재료는 명확한 게 좋다.


아직 아이가 미취학 상태라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지만 밥에 대한 고민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끼는 때가 있다. 아이는 가지볶음이나 고구마줄거리, 미역줄기 같은 투박한 시골 반찬을 좋아한다. 식당 밥보다 집밥을 더 잘 먹는다. 음식에 대한 표현도 곧잘 한다.

"엄마, 오이가 아삭아삭해서 맛있네." , "버섯은 쫄깃쫄깃해서 씹으면 재밌어." “참외에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하네.”

이것은 음식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어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개방성으로 수렴된다.


밥을 먹을 땐 식구들이 밥만 먹는다. 식사 시간엔 예외 없이 다 같이 음식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요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추가 제철이라 달큼하고 씹는 맛이 좋다든가, 이번에 직거래로 산 계란은 비린내가 안 나서 괜찮다든가, 해가 적당할 때 딴 고추가 껍질이 얇아서 아삭거린다든가 온통 음식 이야기로 화제를 모은다.

그러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제가 먹는 음식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자기도 보탤 말이 없는지 눈을 굴린다.

"엄마, 그래서 오늘 계란말이가 더 고소한 거구나?"

여섯 살 아이의 야무진 말에 식구들이 웃게 되니 식사 시간이 풍성해진다.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환경이나 윤리적 소비에 대한 생각을 동반한다. 자연의 힘으로 자란 농산물이 농부의 땀방울로 키워져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면, 땅도 살리고 1차 생산자도 살리고 나의 몸도 살린다. 순환이다.  내가 먹는 것은 똥으로 나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람과 지구는 보이지 않은 촘촘한 연쇄고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소비하고 먹는 것은 어떻게든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밥을 하려면 자연의 힘으로 길러낸 원재료가 필요한데, 6월에도 35도가 넘어가는, 이상 기후가 이상이 아닌 일상이 된 세상을 나는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밥에 대한 고민은 지구환경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고,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덜 쓰고, 안 사고, 다시 쓰는 것을 생활화한다. 생활의 불편함을 내 삶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특히 소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꿨다. 필수품을 제외한 물건 소비를 지양한다.

앞으로 필요할지도 몰라 사두었던 싸고 쓸모없는 것들, 있지만 떨어지는 게 싫어 대량 구매한 물건들, 1+1이라서 고민 없이 사들인 것들을 이제는 사지 않는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예쁘고 소재 좋은 옷을 포기하는 것이 여태 어렵지만 구매 빈도를 줄였다. 3년 이상 입을 수 있는 질 좋고 바느질이 꼼꼼한 옷을 제 돈 주고 산다. 한철 입는 패스트패션은 이제 내 옷장에 없다.


아이를 낳은 후 시작된 밥에 대한 고민과 인식의 변화가 이토록 내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밥과 자연 그리고 소비,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하여.

이쯤 되면 아이가 미래에서 온 내 스승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크는 만큼 어른의 정신도 자란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제 아이 나이 6세인데... 앞으로 갈 길이 먼 자가 너무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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