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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2. 2024

휴양의 사치, 몰디브에서

신혼여행으로 몰디브를 다녀온 후 두 번 더 갔다.

격년으로 모두 다른 리조트를 다녀왔다.

라스푸쉬(스피드보트), 벨라사루(스피드보트), 마지막으로는 드리프트(경비행기+스피드보트).

몰디브는 보통 섬 하나에 리조트 하나가 있다. 섬으로 이뤄진 나라이기 때문에 리조트를 고를 때 국내선+보트로 갈지, 경비행기+(보트)를 타고 갈지, 스피드보트를 타고 갈지가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공항과의 거리에 따라 교통수단이 나누어진다고 봐야 한다.


이미 몰디브까지 가는 데만 해도 입이 바싹 마르고 피곤한데 또 국내선을 기다려 1시간가량 타고, 보트를 타야 한다면? 아무리 마음에 드는 리조트라 할지라도 두 번 세 번 고민할 일이다. 왜? 몰디브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침대에 다이빙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 땀이 줄줄 흐른다. 적도 근방을 체감하는 저세상 더위라고나 할까. 우리는 결혼식이 10월에 있어서 멋모르고 청바지를 입고 갔는데 입국하자마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지가 다리에 들러붙었다.  


몰디브 여행을 계획한다면, 교통수단을 먼저 고려한 뒤에 리조트를 고르는 걸 추천한다. 하이엔드 리조트일수록 에어컨을 갖춘 대기실도 훌륭하고, 어쩌면 전용 버틀러가 직접 나와 안내할 수도 있으니 경비가 고려 대상이 아닌 분들에게는 물론 아무 상관없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몰디브 풍경이 인도양에 진주 목걸이로 수놓아진 것처럼 장관이라고 하니 마지막엔 드리프트(경비행기+보트)를 택했지만 다음 몰디브행 땐 스피드보트를 타고 갈 만한 거리의 리조트로 갈 것이다. 우린 그때보다 더 늙어, 가는 여정만으로도 훨씬 더 힘들 것이기에.  

몰디브는 사치를 부리지 않고서는 좀처럼 택하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가 처음 몰디브를 갔을 때 둘이 단 돈(?) 500만 원에 직항과 다름없는 비행기 편(콜롬보 1시간 레이오버)을 통해 다녀왔다. 심지어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였다. 10년도 넘었으니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 물가로는 유럽여행 패키지도 200만 원이 안 되는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었으니 저렴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우리가 세 번이나 몰디브를 간 이유는 단순하다. 몰디브를 다녀오니 몰디브 외에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아무 데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바로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던 그 시간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빛으로 일렁이는 투명한 바다, 남국의 뜨겁고 메마른 바람, 적도 부근의 석양, 눈부시도록 새하얀 모래 알갱이. 무엇보다 섬에는 투숙객과 직원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지극히 프라이빗한 공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몰디브에 가면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무엇도 없고 하늘과 바다만 눈에 가득 담긴다.

드리프트 리트리트 리조트에는 손님, 직원을 다 합쳐도 머무는 사람들이 50명도 안 되어 보였다. 아마도 주말 오후, 우리 동네 별다방에 앉아있는 손님들보다 적은 수일 것이다.


한가하고 편안하며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그 분위기는 몰디브만이 갖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그곳에 있다. 멍하니 흐르는 시간에 머물 수 있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 처리할 일, 가야 할 곳, 볼 것도 없이 그 시간에 오로지 머물러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도시인에게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우리가 가 본 세 곳의 리조트는 각기 개성이 달랐을 뿐 실망한 곳은 없었다.


신혼여행지로 간 라스푸쉬는 당시만 해도 오픈한 지 1년이 채 안 된 곳이어서 어딜 가도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이 들었다. 리조트 구석구석에 묻어나는 젊은 인테리어 감각도 있었고, 딱 있을 것만 있는, 실용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리조트랄까? 5일 내내 무료 드링크에 알딸딸하게 취해서 리조트 구석구석을 어슬렁어슬렁 다녔던 기억이 남는다.

신상 리조트라 그런지 직원들의 미소에도 밝은 햇빛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어쨌든 몰디브에서 첫 리조트고, 올인클루시브니 비용 걱정도 없어 만사 느긋하고 행복감으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했을까?  


두 번째로 간 벨라사루 리조트는 세계적인 호텔 리조트 체인인 유니버셜 그룹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운영면에서 조금 더 체계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리조트 객실(수상빌라, 수상 풀빌라 비치빌라, 비치 풀빌라 등) 수도 많고, 직원도 많고,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인다. 대신 리조트 구석구석 돈 냄새가 많이 난다.  자본주의 미소 뒤로 속삭이는 ‘show me the money’ 느낌.

여기는 우리가 하프보드(아침, 저녁식사 포함)만 신청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룸서비스 시켜 먹고 간식 먹는 비용이 많이 추가됐는데 작은 페트병 콜라 하나에 6달러가 넘어서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래도 최근 리조트라 드리프트 리트리트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앞선 두 리조트에 비해 규모도 작고, 더 자연친화적인 느낌의 소박한 리조트였다. 직원들도 easy, 손님들도 easy. 번잡한 세상과 동떨어진 천국 같은 곳이었다. 숙박비도 나름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멋들어진 인테리어나 힙한 바는 없지만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곳이었다.


몰디브 바다는 따뜻하다. 바닷속에 몸을 담그면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에 그저 몸을 맡기고 싶은 기분이다. 그리고 아침 바다에 들어갔을 때 문어와 함께 헤엄치고, 물고기가 알을 낳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뿌옇게 안개처럼 부유하는 치어 알들을 보는 건 예삿일이다.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에 내가 출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무릎 높이가 안 되는 얕은 곳에도 색색의 열대어들이 가득하고, 바다거북, 베이비 샤크, 가오리까지. 매일매일 신기한 바다 생물과 함께 수영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여긴 직사광선이라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 필수다. 선크림을 발라도 약한 피부에는 햇빛 두드러기가 올라올 정도로 해가 강하다.


지나간 시간의 기록을 남기려고 사진을 뒤져보니 더 그립다. 겨울엔 아마 더 그리워질 것 같다. 여행 적금을 들어 내년쯤 다시 가볼까 싶다.

월급쟁이에게 길어봤자 일주일의 휴가가 되겠지만 그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르니 괜찮다. 급할 게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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