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

예레미야 6-7장

by 라파엘

성전이라는 외형적 형식이 아니라, 생활과 행실을 고칠 것을 말씀하신다. 교회가 구약시대의 성전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회에 다닌다고 신의 가호 같은 보호막이 생기지 않는다. 본질은 '생활과 행실'이다. 신의 가호는 생활과 행실이 선하게 회복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다. 다만, 제도적 교회를 통해서도 분명 선한 행실로 변화가 나타난다. 가정이 회복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선을 하고, 욕망을 절제하는 일을 보았다. 그럼에도 제도 교회가 에클레시아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면도 겪는다. 제도 교회는 에클레시아의 본질인 공동체의 소명적 연합이 없이, 교회라는 좋은 단어를 껍데기만 가져온 것은 아닌지, 반성적 태도로 끊임 없이 개혁해나가야 부분일 것이다.


제도 교회의 긍정적 면이 있기 때문에, 외형적 형식과 의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신앙적 성숙이 저절로 이어질 것이라고 안주해서도 안될 것이다. 의도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삶에 적용하는 것이 없다면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신앙의 본질인 장소가 아닌 삶의 변화, 말이 아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현대판 바리새인'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본질인 생활과 행실이 선하게 회복된 상태는 어떤 것일까? 생각에, 몇 가지가 떠오른다. 베푸는 마음.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것. 단점을 품어서 개선하도록 도와주고, 장점을 격려하는 것. 이처럼 어울어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웃사랑의 가치로 화평의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는 태도가 선하게 회복된 상태가 아닐까 한다. 종교적 언어로 점철된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자이며,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자라고 하셨다. 이처럼 외형적 형식이 충족되더라도 본질은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말씀으로 비추어보아, 신앙의 본질은 우선 영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이 마음을 변화시키고, 마음은 행실을 변화시킨다. 궁극적으로 영의 변화는 말씀과 기도로부터 온다. 바알에게 분향한다는 것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한다면, 영의 선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물질적 풍요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을 말한다. 반복적 제련을 통해 불순물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불순물을 제거할 수 없는 '내버린 은'이 되고 만다.


위기인줄 모르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한 채, 가장 좋은 옛길을 잊은채, 괜찮다, 평안하다 말하는 예루살렘과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는 오늘날에도, 나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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