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엄마의 죽 12
하얀 죽
어려서 편식이 심했던 나는 무엇을 주어도 '안 먹어'로 일관했다.
지금이야 동그랗다며 신랑이 놀려대는 지경이 이르렀지만, 어린 시절 나는 작고 마르고 허약했다.
빠른 생일이라, 국민학교 입학이 빨랐던 나는 같은 1학년 들보다 현저히 작았기 때문에 가방을 메고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이고, 가방이 떠다니네, 바람에 날아갈라'하시며 걱정을 담아 놀려대곤 했었다.
이렇게 작으면서 밥도 잘 먹지 않고 편식도 심했으니, 엄마는 나에게 무엇이든 먹이려고 노력하셨다.
아침이면 하얀 쌀밥에 물을 부어 살짝 끓인 하얀 죽을 만들고, 숟가락에 씻은 김치를 올려 한입씩 먹여주곤 하셨다. 그래도 싫다 고개를 돌리면 내가 좋아하는 노란 슬라이스 치즈를 잘라 밥에 얹어주셨다.
어떤 날은 하얀 죽에 버터 한 조각 넣고 간장에 살살 비벼 주기도 하셨다.
결혼 초, 죽을 좋아한다는 신랑을 위해 처음으로 죽을 끓여 보았다.
제주 오일장에서 사 온 딱새우 10여 마리를 삶아 육수를 내리고, 딱새우를 하나하나 까서 큼직하게 자른 후 그 육수에 밥을 넣고 다시 푹 끓여 딱새우 죽을 완성을 했다.
아직 해 본 요리가 몇 개 없는 요린이 시절이라, 죽 한 그릇 만드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뿌듯하여 다음에 또 만들어 줘야지, 생각만 하고 죽 요리를 자주 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나의 귀차니즘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번거로운 것을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끓여 주셨던 것 같다.
나도 신랑을 위해 맛있는 죽 한 그릇 끓여 봐야겠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신랑 딱 두 사람에게만 알려주었다.
전문가도 아닌 초보의 글쓰기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기 민망하여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글을, 엄마는 열혈 독자가 되어 어색한 카톡으로 열심히 감상을 보내주셨다.
어쩜 그렇게 기억을 잘하고 있냐며 감탄을 하기도 하시고, 레시피를 정정해 주기도 하셨다.
역시나, 우리 딸이 최고라며 글을 잘 쓴다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객관적으로 최고가 아닌 걸 알면서도 엄마의 칭찬이 응원이 되어 또 한 줄 써 내려가는 힘이 되었다.
아직 엄마의 음식은 많이 남아 있다.
처음 계획은 음식 이야기와 함께 상세한 레시피를 적어보려 하였으나, 엄마의 레시피는 정확한 계량이 어려워 자칫 잘못 적었다가는 완전히 맛이 다른 음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방법만 올리기로 하였다.
나도 엄마의 음식을 따라 할 때면, 먼저 인터넷을 뒤져 가장 비슷한 기본 레시피를 찾은 후 엄마에게 물어보며 들어갈 재료와 순서를 다시 배열하고, 마지막으로 '이건 꼭 넣어야 해'하는 엄마의 TIP을 적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요리책에 기록되는 것처럼 정확한 레시피를 남길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내 글을 읽으며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90세를 훌쩍 넘기는 장수를 하시고 20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언제나 단정한 쪽진 머리를 하시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셨었다. 함께 살지는 않아 할머니의 음식을 맛볼 기회는 명절뿐이 었지만, 며칠씩 우리 집에 머무를 때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광복과 6.25를 모두 겪어내신 우리 외할머니, 기회가 되면 엄마의 이야기를 빌어 우리 외할머니의 음식 이야기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