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을 살리는 전복죽

#에세이. 엄마의 죽 11

by 라핌
전복죽


"옛날에 결혼반지 팔아서 아빠 전복죽 해줬잖아"

엄마의 레퍼토리 중 하나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강원도가 고향이신데, 서울에서 만나 결혼을 하셨다.

결혼 초 갑자기 아빠가 토사곽란이 와서 심하게 아프신 일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 지인도 별로 없고 어찌할 바를 몰라, 엄마는 없는 형편에 결혼반지로 맞춘 금가락지를 팔아 전복을 사서 아빠를 위해 전복죽을 끓였다고 하셨다. 그 전복죽을 먹고 아빠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엄마는 두고두고 하시곤 한다.




딸 셋 중 막내딸인 나는 유독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언니들이 모두 결혼을 한 뒤에도 부모님과 나 이렇게 셋이 강원도 산소를 방문하기도 하고 여름휴가철 국내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어느 해인가(2007년) 큰맘 먹고 해남 땅끝마을까지 갔던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면허가 없던 나는, 부모님이 운전해 주시는 뒷좌석에 편히 앉아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땅끝마을 전망대에 오르고, 배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바다에 펼쳐진 넓은 전복양식장 풍경에 감탄을 했다.

아빠는 바닷가 여행지에 가시면 수산시장을 꼭 들르시는데, 이때도 어김없이 수산시장에 들러 구경을 하며 전복을 한가득 사 왔다.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서울 마트에서 한 마리 만원은 받음 직한 커다란 전복을 절반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10개쯤 샀던 것 같다.

엄마는 이렇게 사가면 다 일이라고 투털 대시면서도, 민박집에 도착하여 전복을 큼직하게 손질해서 맛있는 전복죽 끓여 주셨다. 엄마가 해 준 전복죽을 맛있게 먹고 민박집 앞 해변으로 물놀이를 나갔는데, 강원도의 차갑고 거친 파도에 익숙했던 우리는 따뜻하고 잔잔한 남해의 바다가 신기하여 밤 깊은 줄 모르고 오래도록 물장구를 치며 따뜻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놀았다.




죽 전문점들이 많아지고 나도 밖에서 죽을 사 먹을 일이 종종 생겼다.

전복죽을 주문할 때면 누런 죽에 깨알같이 작은 전복 알갱이가 숨어있는 모습에 실망을 하게 된다.


제주도에 와서 내장까지 싹 갈아 넣은 푸르스름한 전복죽도 물론 맛은 있었지만, 해남에서 먹은 큼직큼직한 전복이 가득 담긴 추억 속 엄마의 전복죽이 아직은 나의 전복죽 순위 1등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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