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위한 호박죽
#에세이. 엄마의 죽 10
호박죽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엄마는 커다란 늙은 호박 하나를 사 오셨다.
단단하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은 장식품인 양 며칠씩 진열되어 있다가, 어느 날 엄마가 마음먹고 호박죽을 만들어 주셨다.
커다란 호박을 자를 때면 엄마는 불편하신 한쪽 팔 때문에 온몸으로 호박을 눌러가며 힘겹게 자르곤 하셨다.
단단한 껍질을 벗기는 것도 일이었는데, 손을 잘 베이시는 엄마가 칼을 갈지 않고 사용하셨기 때문에 우리 집 식칼은 모두 무뎌져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무딘 식칼로 단단하고 커다란 늙은 호박을 자르고 있으면 나는 괜히 옆에서 얼쩡거리며 구경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저리 가! 다쳐'하시며 호박에 다시 열중하셨다.
그러다가 의례 한 번씩 너무 힘을 주어 호박 껍질을 깎다가 손가락을 베이곤 하셨다.
커다란 호박은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다시 세로로 큼직하게 조각을 내어 껍질을 깎고, 다시 조각조각 잘라 냄비에 담겼다. 단단했던 호박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푹 삶아지고, 삶아진 호박을 으깬 후 찹쌀을 넣어 노란 호박죽이 완성이 되었다.
호박죽을 끓인 날이면 저녁 반찬이 따로 없었다. 노란 호박죽 한 그릇과 김치면 되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호박죽을 좋아하였고 그중 큰 언니가 가장 좋아했었는데, 언니는 두 그릇도 거뜬히 먹어 치웠다. 그래서 큰언니가 결혼을 한 후에도 커다란 냄비에 호박죽이 완성되면 엄마는 언니의 집에 호박죽을 가져다주곤 하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 편식이 심했던 나는 호박죽 반 그릇을 떠 놓고도 깨작거리며 먹는 둥 마는 둥 하였기 때문에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꼭 다른 반찬을 만들어야만 했다.
세월이 흘러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집으로 들어서는 현관까지 달큼한 호박죽 냄새가 가득 퍼지는 날이면, 엄마는 내 식사부터 챙기신다.
"우리는 호박죽 먹었는데 너는 뭐 해줄까?"
"됐어 안 먹어."
"그러지 말고 조금 먹어봐."
"싫어"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 들어오며 엄마는 연신 물어보신다.
"그럼 고기 구워줄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씻고 나오면 어느새 나를 위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냉동실에 있던 소고기를 굽고 피망과 양파를 잘라 넣어 소금 간을 하여 살짝 볶은 엄마표 고기반찬!
참 손 많이 가는 철없는 막내딸이었다.
퇴근 후 씻고 나오면, 요술 마냥 나를 위해 차려져 있던 엄마의 밥상에 대한 감사함을 지금에라도 깨닫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